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입시왕, 공부를 부탁해』

<입시왕, 공부를 부탁해>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호기심 가득 찬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그 순수함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꾼다. 그리고 자라면서 그 꿈에 다가간다. 그러나 아이들이 생각하는 꿈과 어른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꽤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은 ‘교육’이라는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줄다리기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서는 안 되는 ‘둘 다 이겨야’ 하는 매우 힘겨운 줄다리기이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중2 학생의 수학 과외였다. 지난 수학 시험에서 20점대를 맞았단다. 테스트를 해보니 세 자릿수 덧셈 뺄셈을 못했다. 한 달 뒤가 중간고사였는데 시험 범위는 함수였다. 엄마는 안 계셨고 언니와 오빠가 있었다. 언니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오빠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오빠는 고등학교라도 무사히 졸업하는 게 온 가족의 소원이란다.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독특한 패션과 사방을 찌르는 신호등 색상의 헤어스타일, 그리고 피어싱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나한테 공부하라고 그러면 큰일 날 줄 알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가 학원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형 학원이 아니라 버스 여러 대를 운영하는 꽤 규모가 있는 학원이었다.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본인의 자식은 가르칠 수 없었나 보다. 어쨌든 집안에 한 명은 4년제 대학교를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모든 기대가 셋째로 향했다. 그러나 아이는 공부할 때도 애완견을 끌어안고 있을 정도로 학습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습 의욕이 부족했고 같은 문제를 계속 틀릴 때면 닭똥 같은 눈물로 책을 적셨다.


  많은 것을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어찌어찌해서 7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받은 수학 점수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란다. 이후로 그 아이를 1년 정도 더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했었다. 그리고 군복무 때문에 훈련소로 향하면서 인수인계를 했다.


  딱 그 아이까지만 가르쳤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기억으로 평생 살았을 것이다. ^^;


학창 시절의 성적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하고 놀 궁리만 한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부모 자녀 간 갈등이 시작된다.


  한 어머니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이명’이라는 병을 얻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듯 귓가에 울린다고 한다. 힘겹게 첫째 아이가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그 증상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둘째가 공부를 안 하고 말을 안 듣자 다시 이명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귀에서 삐 소리가 난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자녀들이 왜 우리 어머니를 이토록 아프게 만든 것일까?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선행학습은 어디까지 시켜야 하는지, 자기주도학습은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학원에 다녀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우리 아이가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는지, 왜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지, 아이들과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줘야 하는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등, 아이의 교육에 관해 부모가 궁금한 것은 끝이 없다. 이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자니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질문들은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답은 없을지언정 오답은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말수가 줄어들고,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고, 학업에서 멀어지는 것이 부모가 오답을 선택한 결과이다.


  학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열심히 가르치면 아이들의 실력이 금방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분명히 어제 설명했는데 아이들은 배운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프린트를 나눠 주면 대부분 잃어버리거나 가방 속에서 구겨졌다. 하기야 책도 잃어버리는 판에 프린트야 오죽할까.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의 학업 패턴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시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궁금증이 싹트기 시작했다.


  ‘능력이 비슷한 아이들이 같은 교재를 가지고, 똑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시간 동안 공부하는데 왜 이토록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까?’


  타고난 능력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간혹 이런 아이들 한둘쯤 찾아볼 수 있다.

“너는 공부를 왜 하니?”

“음, 나는 공부가 제일 쉬운 것 같아. 너는 안 그래?”

이런 대답을 하는 아이들은 열외로 하자. 우리 아이들은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테니까.

“아이, 몰라. 매점이나 가자.”

“말 시키지 마. 나 지금 바빠. 지금 게임 중이야.”


  이런 대다수 아이들의 잠재력을 어떻게 하면 이끌어낼 수 있을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내가 수업을 더 잘하면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어 교수법을 배우는 TESOL 과정에 등록했다. 배운 것을 수업 시간에 적용해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교수자로서 개인적인 수업 만족도는 약간 높아졌지만 학생들도 그렇게 느꼈을지는 미지수였다. TESOL을 시작할 때는 이것만 배우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교수법의 변화로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교육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유명한 책들을 섭렵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예습과 복습, 꿈, 

목표와 계획, 자투리 시간 활용

  이를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예습과 복습이 중요한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습과 복습이 중요한지 알아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궁극적인 꿈은 ‘공부하지 않고 노는 것’이란 것을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표를 정해서 계획을 짜라고 하면 방학 계획표처럼 지킬 수 없는 계획표가 나왔고, 자투리 시간에는 눈이 충혈될 정도로 게임을 하고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자투리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책에서 읽을 때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해 보니 ‘어?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TESOL에서 배운 교수법도,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부법도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못했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아이들의 마음을 파헤치기 전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육심리를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공부를 마칠 때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만 가지고 나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시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한마디로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 지침서’이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한 가지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아이의 발달 속도, 장단점, 꿈, 사춘기, 부모-자녀 관계, 대화법, 공부법, 사교육 등의 변수가 서로 얽혀 있는 고차원의 방정식이랄까? 이런 복잡한 변수 속에서 아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 양식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어른들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게 세계의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분석하고 토론하고 논문을 쓰면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나갔다. 이후 공부한 이론들을 교육 현장에 직접 적용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외국의 성공적인 사례들을 국내에 적용해 보면 십중팔구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를 우리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쳐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부딪쳤던 난관들,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방법들, 그리고 의미가 있었던 연구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1968년 하버드대학교의 사회심리학과 교수였던 로젠탈 교수와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들은 먼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다. 그리고 지능검사의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았다. 그 학생들의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이 학생들이 지적 능력이나 성적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말로 하면 영재반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8개월 후 이전과 같은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다. 정말 놀랍게도, 8개월 전에 뽑은 20% 학생들이 나머지 학생들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어른들의 기대와 믿음이 아이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은 공부를 조금 못해도, 부족한 점이 많아도 포기하지 말고 진심으로 이끌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아이에 대한 믿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한다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홍석철

프로복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영어 강사.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체육관으로 불러 스파링을 한 후 공부를 시킨 것은 업계 전설로 남아 있다. 


입시·교육에 관한 정보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펜타킬’, ‘하니샘’과 함께 ‘홍프로’란 닉네임으로 2014년

부터 팟캐스트 〈입시왕〉을 진행하고 있다. 족발을 먹으면서 충동적으로 의기투합하여 시작했지만 현재 100만 명에 육박하는 청취자가 입시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입시왕〉은 2016년 대한민국 최고의 팟캐스트 Top 50에 선정되었다. 


『입시왕, 공부를 부탁해』는 2016년 제2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을 받은 <교육컨설팅>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을 추가하여 2017년 3월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팟캐스트 입시왕 바로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