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척 어르신의 장례가 있어 진주에 다녀왔다. 새벽 일찍 출발하여 오전에 도착한 빈소에서 문상을 하고,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시간이 붕 떠버렸다. 문상객들도 많지 않은 시간대였던 데다가, 딱히 할 것도 없어 구석에서 졸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작은아버지가 빈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기 집에서 눈이라도 붙이고 오라고 제안을 했다. 냉큼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동생과 함께 간단히 짐을 꾸려서 빈소에서 나와 찾아 간 작은아버지 댁 현관문을 열자, 살짝 푸른 빛이 감도는 진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새파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무지게 생긴 러시안 블루의 이름은 랭시였다. 갑자기 사람이 많아져서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미안해졌다. 평소에 동물을 무서워하는 동생과는 달리,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로서는 랭시와 친해지고 싶어져서 안달이 났다. 동네 여기저기에 떠돌아 다니는 길고양이들과 가끔씩 서로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지내기에 친해질 자신도 있었다. 언뜻 신비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작은 생명체와의 조우에 방금까지도 온몸을 짓누르던 졸음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눈인사도 하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려고도 해 봤지만, 랭시는 잠깐 반응하고 말 뿐 금방 시큰둥해 했다. 오히려 특이하게 생긴 내 배낭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거기에만 연신 볼을 부벼댔다. 좀처럼 거리를 좁혀주지 않길래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는데, 나도 모르는 새 어떤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는지 내 손에 랭시의 손톱이 벼락같이 박혔다. 살짝 피가 맺히고 말 정도로 긁혔을 뿐이라 상처가 아프지는 않았으나, 그러고는 후다닥 뛰어가 딴 짓을 하고 있는 랭시와의 거리감에 더 아팠다.
누군가의 낯가림이 서운한 이유는, 낯가리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런 종류의 서운함은 오랜만이었다. 무작정 누구와든 친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어렸을 때와 달리, 나이를 더할수록 적당한 거리감이 지혜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을 말로는 물론, 몸짓이나 눈빛으로 은근히 표현하는 것조차 어딘가 어색해졌다. 그래서 갈수록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이 서툴어져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사람의 손을 탄 자그마한 동물이라 하더라도 그와 친해지는 것 또한 무척이나 어려운 일임이 당연할텐데, 이토록 서툰 호감의 표현이라도 쉽게 받아줄 것이라고 간과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랭시를 바라보다가 미뤄뒀던 잠이 다시 쏟아져 눈이 감기고 말았다. 중간에 잠깐 깼는데, 눈이 마주친 동생이 내 머리맡 쪽으로 스윽 눈짓을 했다. 그곳에는 몸을 동그랗게 만 랭시가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한참을 보고 있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슬슬 다시 빈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 짐을 챙겼다. 랭시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어서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그새 익숙해진 것인지 아까 할퀸것이 미안했던 것인지, 다행히도 이번에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친해진 것일까. 다음에 왔을 때도 나를 알아봐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섰다.
202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