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하루 종일 혼이 났다거나 일상을 살다가도 삶의 덧없음이 느껴지면 옛날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그때 그 옛날에는 이번 주말은 친구와 뭐 하고 놀지, 애인과 어디를 갈지가 가장 걱정이고 고민이었다. 무엇을 해도 즐겁고 누구와 함께 해도 행복했던 그때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옛날 생각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그냥 생각만 해도 미소가 피어오르는 친구들과의 옛 추억이나 이제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던 옛 연인과의 추억은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므두셀라 증후군은 창세기 5:21~27에 등장하는 인물인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그는 방주를 만든 노아의 할아버지이자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로 960세까지 살았다. 므두셀라의 이름이 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했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지나간 세월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추억이 가득하다는 의미인데 960세까지 살았다면 확실히 일반 사람들과는 추억의 용량이 다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므두셀라의 이름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있다. 이직을 하고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나름대로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왔고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업무상 실수로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이 나다 보니 점점 위축되었고 출근이 무서워졌다.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걸까 고민하는 사이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또 혼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든 훌쩍 떠나버리고 싶기도 했고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있거나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티게 되었다.
그러다 4월 초 싸이월드가 다시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버상 문제로 아직 어플을 실행하고 겨우 로그인만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나를 10년 전으로 데려가기에는 충분했다. 싸이월드 로고와 미니룸, 메인 컬러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절 노래가 들리고 친구들이 보이는 듯했다. 학교가 끝나면 시내를 활보하고, 주말마다 노래방이나 대공원을 안방 드나들 듯하며 놀던 때를 생각하면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면서 아련한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은 얼마 뒤 사진첩이 복구되고 나서 더 강해졌다. 집에서 술을 한잔 마시며 사진을 하나씩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고 소름이 돋았다. 오글거리는 사랑 글귀들과 차마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든 인터넷 소설 명대사들, 10년 전 셀카나 내가 쓴 글들은 나를 완벽하게 그 시절로 돌려놓았다.
대체로 2010년, 2011년도 게시물들이 많았다
한창 옛날 추억에 빠져있다 보니 내 또래 주변 사람들도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싸이월드 시절 재밌었던 추억이 있었냐고 물어봤었다. A는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내가 관심 있는 누군가가 내 다이어리를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나 읽는 건 싫으니 스티커로 내용을 가려놓았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내가 붙여 놓은 스티커를 치우고 내용을 읽어보려고 하지 않겠냐며 그 순간들이 너무나 설렜었다고 했다. B는 싸이월드도 좋았지만 네이트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9년 싸이월드와 네이트의 메인이 통합되었으니 싸이월드 얘기에서 네이트온으로 주제가 넘어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네이트온 기능 중에는 사람들이 내가 로그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게 하는 비밀 로그인 기능이 있었는데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로그인을 했나 안 했나 염탐하던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무튼 각자 떠올리는 추억은 다르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그 둘도 입을 모아 얘기했던 것은 "그때 그 시절이 진짜 좋았지"였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미화해서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행복한 기억들만 남기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옛 추억을 행복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실제로 지금 그 시절에 정말 힘들었거나 고생했던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들만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조금 서글퍼졌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도 나를 만들었을 텐데 그런 기억들이 없으니 뭔가 지금의 내가 반쪽짜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 이런 상태를 '증후군'이라고 표현했던 게 조금은 이해가 됐다. 행복한 기억을 남긴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하지만 행복한 기억만 남아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힘들었던 과거를 잊어버렸으니 지금 힘든 상황을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갔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 또 자연스럽게 행복했던 기억들만 떠올리게 되고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만 내쉬게 된다.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지금의 나라면 확실히 나는 병적인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이 맞다.
므두셀라 증후군의 반대 개념인 순교자 증후군은 과거의 기억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쁜 감정만 떠올리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증상이지만 이런 증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어차피 둘 중 하나의 증상을 앓아야 한다면 차라리 므두셀라 증후군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면 지금까지의 나는 물론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내가 너무 불쌍할 테니까. 그러니 지금 행복한 기억만 가진 이대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힘들었거나 안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면 그때는 그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지금까지 반쪽짜리로 살아왔으니 나머지 반쪽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앞으로를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