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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Jan 14. 2023

좋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해

[서평] 김정현, 『나다운 게 뭔데』

“나는 내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하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좋고 싫음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나 서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를 대표하고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즉 ‘가장’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번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 사람은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일까?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꼭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꼭 정해두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양식을 예로 들었을 때 피자, 햄버거, 파스타, 리조또 등 여러 음식이 있는 와중에 내가 하필 피자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김정현 작가는 그의 저서 『나다운 게 뭔데』에서 “왜 그래야 하는데?”라며 오히려 반문한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그것들이 속한 카테고리도 한두 개가 아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인스타그램에 본인이 좋아하는 게시글을 저장과 컬렉션 기능을 활용해서 목록을 만들고,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도 든든하게 준비해 두었다. 일명 ‘호모 목록쿠스’라고 자신을 명명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것조차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목록화 하는 것이 귀찮다고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더 많이 재밌고  싶다”며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이렇게까지 발전적으로 즐기는 모습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감탄을 내뱉고 싶다”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렇게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를 특정해서 ‘가장’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지금의 자신이 좋으며, 행복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주입시킨다.


사실 바뀌는 나를 보는 게 기쁘다. 전에 없던 내 모습을 목격하며 깜짝 놀라는 느낌이 낯설고 재밌다. 의외의 취향을 발견할 때마다 그게 다 내 영역이 넓어지는 중이라 생각하면 세상 뿌듯해진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그 행복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좋아하는 게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면서 그 안에서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 1등부터 10등까지 세로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그랗고 넓은 판 가운데 자신을 세워두고 그 주위로 좋아하는 것들을 넓게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모습은 ‘이것 보다는 저걸 좋아해’라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등급을 매기는 지난 날의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A보다는 B가 좋으니까 B를 취했을 때 더 행복함을 느낄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함정 가득한 명제를 믿어왔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한다.


이것저것 다 흡수하고 따라 하며 피곤하게 살 생각은 없지만,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지레 단정하며 같은 자리에 고여 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 앞으로 금기어는 ‘내가 감히’. 어제의 나를 자유롭고 유쾌하게 배신하겠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행복함으로 이어진다. 서울대학교 사회심리전공 최유현은 그의 논문 <행복한 사람들은 분명한 선호를 가지고 있을까?>에서 ‘선호의 내용과 구조를 측정함으로써 분명한 선호와 행복의 관계를 탐색하였다. 그 결과, 행복은 선호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중 오직 좋아하는 것과 뚜렷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며, ‘행복한 사람들이 호불호가 많지는 않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저 ‘호’가 많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며, 싫어하는 것은 비교적 잘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세상에는 즐길 거리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이런 세상에서 굳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지을 필요는 없을 뿐더러,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굳이 등급을 매길 필요도 없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주고, 또 행복하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 ‘좋다’는 것만큼 확실하게 행복으로 안내하는 나침반은 없다. 싫어하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몰랐던 것 중에 ‘나 이런 걸 좋아하네?’하며 새롭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 가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아이덴티티보다 ‘좋아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이 더욱 행복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등급을 매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욕망의 대명사, '탐욕의 그리드'가 했던 명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잘난척 하면서 욕망에 등급을 매기니까 니들 인생이 복잡한 거야”




*참고 문헌

- 김정현, 『나다운 게 뭔데』, 알에이치코리아, 2022.09.26.

- 최유현, 「행복한 사람들은 분명한 선호를 가지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사회심리전공 석사학위논문,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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