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오락기,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너의 찰나
‘안녕하세요. 지하2층 담당자분이나 혹은 유아동을 담당하시는 분과 통화를 좀 하고 싶어서요’
귀찮은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피해갈 수 있는 일이면 저 멀리 피해서 돌아가던 내가 2년 전 나답지 않게 어느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엄마’ 가 되었으니까.
우리 아파트 밑에는 ㄹ*마트가 있다. 아이는 그 곳에 입점해있는 수족관에 가서 금붕어 보는 낙으로 세 살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날들이었다. 한참 동안 금붕어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ㅌ****매장 앞을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꽃집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기…..
우리는 언제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그것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습관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습관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일이 생겨났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가까이 공룡오락기가 생긴 것이다. 두 공룡이 나와 무척이나 진지하게 싸움을 벌인다. 할퀴고 물어뜯고 온몸을 이용해 상대공룡을 때린다. 그리고는 몸의 한군데 어딘가가 떨어져 나간다…… 내 옆에 선 작은 아이는 눈을 떼지 못한다. 좋아하는 공룡들이 나와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를 얼른 안았다. 다음부터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나의 생각이지 아이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습관을 거부할 생각이 없었고, 공룡오락기 앞에서 멈춰서는 일을 습관에 첨부했다. 며칠을 두고 보다가 그 공룡오락기의 잔인함을 모른 척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룡들의 세계만을 놓고 본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실은 이것도 장담은 할 수 없다. 난 중생대에 살아보지 않았으니)이곳은 공룡들의 세계가 아닌 모든 아이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ㅌ**** 앞이었다.
공룡오락기의 이용연령은 적어도 8세 이상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15세 이상 등급을 주고 싶지만)
그날 밤 많은 고민 끝에 ㄹ***에 전화를 했다. ㅌ****앞에 있는 오락기의 이용연령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잘 알지 못하는 듯 두루뭉술한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오락기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인데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오락기이고,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지도하시지 않을까요?’
‘아이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들의 생각대로 다 따라주지는 않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고요.’
수화기 너머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공룡오락기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나이의 아이들이 다니는 장난감 매장 앞이라……옆에 오락기들처럼 폭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대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의논해 보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점들은 다 이렇게 하고 있답니다. 유통구조라는게 많은 게 얽혀있어요. 오락기 하나에도 많은 계약들이 묶여 있는데…… 아 아무튼요 다시 전화드릴 테니 전화번호 남겨주시겠어요?’
그의 친절하지만 당당하고도 피곤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태도에 기가 눌렸다. 자격지심이었겠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애만 중하다고 전화를 한 건가? 하는 느낌을 나는 스스로 받았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왠지 이때는 내가 엄마들의 대표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기다릴게요. 쉽게 생각해주지 않으시고 아이들을 생각해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편과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으며 점차 심장박동수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며칠을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만 했다. 오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오락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나요? 제 주변에는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고상함으로 위장한 채 날을 세웠다. 그도 나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 같은 통화를 여러 번 했다.
결국, 그 오락기는 여전히 ㅌ***** 근처에 있다. 다만 자리를 옮겼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메인 자리에서 저 끝 구석진 자리로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유난하다고 볼 테고, 누군가는 대신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본인 자식만 생각한다고 할 테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들인 마음을 어여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일은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순전히 내 안에서의 옳고 그름의 문제 내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였다.
어떤 컵에 담기느냐의 따라 달라지는 형태가 없는 물처럼 나의 가치관이라는 것도 실은 어떤 마음을 품느냐의 따라 자주 달라진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물이 가진 투명한 고유함처럼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중심이 되는 가치관, 육아관의 고유함은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귀여운 빈틈 정도는 허락해가면서 말이다.
구석진 자리에서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는 공룡오락기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유하고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해주는 것들이 곳곳에 즐비한 세상을 꿈꿔본다.
아이들을 하나의 소비자가 아닌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지켜주고 키워줘야 할 미래의 조각가로 생각되는 날들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온통 핑크빛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일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행복한 새벽이다.
P. S 공룡오락기를 계기로 앞으로 아이를 키워감에 있어서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현재 아이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마트폰 검색이 아닌 가지고 있는 책에서 찾아보는 것이 익숙한 아이지만 아이도 언젠가는 게임이라는 재미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대학생때 카****라는 게임에 빠져 꿈에 나올 지경이었으니.) 지금 생각으로는 아이와 같이 양질의 게임을 고르고(너무 하고 싶어한다면) 온 가족이 함께 열중해 볼 생각이다. 게임이라는 세계의 아이 혼자만 덩그러니 놔두고 싶지 않다. 둘만이 통하는 무언가가 생기게 하지 않겠다. 게임을 떠올리면 함께 밤을 새우는 엄마와 아빠가 그 안에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다 같이 게임에서 탈출을 시도할 생각이다.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 삶이지만 언제고 진심은 통하는 게 삶이니까. 이런 생각도 해보는 새벽이다.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