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위한 이야기

너의 찰나

by 마이아사우라

‘엄마 나 쉬가 나온 것 같은데’

고요한 새벽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아이가 일주일간에 두 번이나 바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얼른 일어나 찝찝했을 아이의 바지와 속옷을 갈아입히는데 ‘엄마 고마워. 자야 하는데 미안해’ 하며 나를 꼭 안아준다.

‘엄마가 말했잖아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돼. 아이들을 도와주고 지켜주는 게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야. 고마워 하는 마음은 엄마가 기쁘게 받을게.’


침대보와 이불을 빨아 말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멋쩍어하는 얼굴이길래,

‘아빠는 학교 가기 전까지 이불에 쉬를 하셨대.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쉬한 이불 본 적 있어?’

아니라며 배시시 웃는다. 의기소침해지거나 살짝 무안해하는 아이에게 ‘아빠도 그러셨대’는 아이를 안심시키는 마법 같은 말이다.


건조기에서 이불을 꺼내 다시 한번 먼지를 걷어내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더라는 아이는 매일 밤 무서운 꿈을 꾸었대. 무서운 꿈을 꿀 때마다 이불에 쉬를 하는 거야. 어젯밤 토리처럼 말이야. 그래서 아더의 엄마는 마법의 세제를 만들기로 했어! 마법의 세제로 이불을 빨아 뽀송뽀송하게 말린 다음 그 이불을 덮고 자면 행복한 꿈을 꾸게 되거든. 밤낮없이 약초를 만들던 아더 엄마는 마법의 세제가 거의 다 만들어질 때쯤 약초 하나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하필 그 약초는 저 멀리 드래곤이 지키는 동굴 안에 있는데 말이야. 아더 엄마는 동굴로 가서 드래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든 드래곤이 깨지 않도록 자장가를 부르면서 동굴에서 약초를 구해왔어. 이제 아더는 행복한 꿈을 꾸면서 밤에 푹 잘 수 있었대. 그리고 토리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있어. 엄마가 그 마법의 세제를 좀 얻어놓은 게 있어서 이불을 빨 때 넣었어. 우리 토리도 오늘 밤엔 행복하고 달콤한 꿈을 꾸게 될 거야.’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면서 아리송한 표정도 언뜻 스친다. 나의 이 허무맹랑하고 일인 독자(아이)만을 위한 이야기를 아이가 믿어 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지어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앞뒤가 엉망이고 우습고 괴짜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아이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서려 있다.

아이에게 습관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장소는 욕실이었다. 기억을 거슬러 그 고군분투의 시간을 생각하니 방금까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던 레몬차가 쓰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방비 상태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도 놀랍고 무섭지만, 적군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다 알면서도 물리칠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일 때 몰려오는 두려움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머리감기 적군이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분 좋게 탕 목욕을 즐긴 아이는 머리를 감으려고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아이가 좋아서 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 –

그렇게 매일 아이의 머리감기 시간이 다가오면 뒷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초록색 창에 수없이 아이머리감기를 검색하고, 머리감기를 도와준다는 시중에 나와 있는 물건들을 보물 모으듯이 수집했지만 하등 소용이 없었다. 잠시 머리감기 평화의 시기가 존재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28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는데 욕조에 걸터앉아 할 수 있는 가장 구부정한 자세로 모유를 먹이며 살살 머리를 감겼다. 단유를 하고 난 뒤 머리감기는 아이에게도 나도 슬프고도 힘든 시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 번은 아이가 머리를 감다가 벌떡 일어나 얼굴에 물과 아기샴푸가 흘러내렸다. 너무 놀라서 아이 머리에 샤워기로 물을 마구 훌뿌렸는데 아이는 진저리를 치며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놀란 내 손에서 떨어져 버린 샤워기는 이리저리 날뛰다가 아이 얼굴에 정통으로 물을 뿌려댔다. 아이도 나도 혼비백산이었다. 그 뒤로 아이는 머리감기를 더 몸서리쳤다. (실은 나도)


머리를 감고 나면 젤리를 주겠다는 회유도, 엄마가 너무 힘들다는 애원도, 머리에 세균이 많아져서 머리카락이 아프다는 말도 안 되는 협박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단호함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는 무관심한 척도 그 어떤 것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버티는 아이 머리를 감기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이었고, 어떤 날은 화가 나서 아이에게 볼멘소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단란하게 보낸 우리의 하루는 결국 머리를 감으면서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고, 육체적으로 고되더라도 마음의 힘듦으로 옮겨가지 못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아이의 울음에 격하게 반응하여 아이와 내 마음에 슬픈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머리를 감기며 이제껏 너무 많이 남겼다는 반성도-)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머리를 감길 때마다 아이의 쩌렁쩌렁한 목청에 바이브레이션을 겸비한 울음소리에 익숙해져 (실은 매번 들어도 새롭고 괴롭다) 가고 있다고 주문을 걸으며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마음을 비워서 일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세상에! 우리의 그 고단한 시간에도 봄이, 기적이 찾아왔다.

탕 목욕을 마치고 욕조에서 물을 빼는 동안 (아이는 머리를 감지 않겠다며 울음을 장전 중이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날 본 개미에 관해 대화를 하다가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울지 않고 내 무릎에 누워 머리를 감을 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울먹이지만 이야기에 빠져들어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의 재미를 끌어모아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며(베짱이와 개미도 머리를 감는 모습을 멋대로 추가했다) 머리를 감겼다. 처음으로 울지 않고 머리를 감은 아이에게 너무 감격해서 과하다 싶게 칭찬을 해주며 쉴 새 없이 뽀뽀를 했다. 아이 대신 내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날 이후로 머리를 감기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고 우는 날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물론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주는 놀랍고도 다정한 힘이 피부에 와 닿았다.





우리는 날마다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살아간다.

글자의 모습을 한 이야기도, 선율의 옷을 입은 이야기도, 목소리를 빌려 나오는 이야기도….

그 어떤 이야기든지 마음을 통해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는 새벽이다.


‘엄마 머릿속에는 동화책이 가득 들었나 봐. 재밌는 이야기가 술술 나와’

‘그 이야기들이 토리 마음속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토리는 재밌고 다정한 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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