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by 다람


학창 시절의 나는 아침 잠이 과도하게 많은 스타일이었다. 아침형 인간을 좇는 한국 사회에서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자 비극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지독하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터라 남들보다 두 시간 일찍 먼저 출발하라는 스타일이었다.


회사를 10분 전도 아니고 정시에 딱 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요새 MZ 세대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일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편도 1시간 반이 걸리니 아버지는 나를 새벽 5시에 흔들어 깨웠다.


오전 10시쯤 느즈막히 일어나야 컨디션이 최상인 소년에게 이건 지옥이었다.


평범한 애들도 새벽 5시에 깨우면 힘든 판국에 아침 잠이 유독 많은 아이에게 그런 방침은 극한의 고통과도 같았다.


이는 마치 소아마비 장애우에게 30kg 완전 군장을 메게하고 매일 100미터 전력 질주를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가면 어떻게 되는가? 계속 졸아댄다. 꾸벅꾸벅 졸다 보면 학교가 있는 청와대 근처에 내려야할 것을 열 몇 정거장을 지나치게 된다.


깨고 보니 서울역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 지각이다.


나는 내 의지와는 달리 항상 지각 대장이었다. 남들보다 가장 빨리 나와 가장 늦게 도착하는 기괴한 촌극이었다.


그러므로 학교에 등교하면 행사처럼 항상 빳다를 맞고 시작했다.


아침잠을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선생들로부터 언제나 '게으른 개' 취급을 받았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아버지가 진작에 깨어 있는 인물이었다면 <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처럼 차라리 홈스쿨링을 시키거나 하다못해 규율이 다소 느슨한 대안학교라도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애석하게도 정규 교육만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애써 자다 흘린 침을 닦고 정신 차려 서울역에 내리면 노숙자들이 가득했다. 동태 썪은 쾡한 눈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기괴하고 느릿한 걸음걸이 등이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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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는 현대 사회의 수렵채집민이다. 뻐꾸기처럼 주변에 버려진 박스를 주워다가 얼기설기 집을 만들고 바닥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를 주워다 핀다.


뿐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광장에서 똥을 싸거나 바지를 벗어 성기를 까거나, 심지어는 거리낌 없이 자위를 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주정부리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일종의 초인들인 것이다.


내가 느끼는 노숙자들은 사회 질서를 아득히 초월한 '달관자'이자 '순수악'이다. 견유학파 대철학자 디오게네스도 아테네 광장에서 대중들을 향해 자위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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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이 훌륭한 지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오만한 아테네 시민들을 도리어 개좆으로 본 것이다.


아마도 디오게네스는 "병신 같은 인간들아 내 좆물이나 쳐먹어라"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한낱 개새끼를 대하는 태도다.


노숙자들은 현대의 디오게네스들이다. 동시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짐승들이기도 하다.


교복을 입은 나를 발견한 그들은 으레 그렇듯 담배를 요구했고, 없다고 하면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교과서에 파묻히기 보다는 본의 아니게 노숙자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늦잠으로 인한 지각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겪지 못했을 경험이다.


노력과 부지런함이 절대 가치인 이 나라에서 아침잠은 철저한 죄악이었고 때문에 소년 시절 나는 항상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놀랍게도 역사적으로 나 같은 인간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와 처칠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데카르트의 늦잠을 이해했던 배려심 많은 교장 덕분에 그는 위대한 철학 이론을 이미 사춘기 때 정립할 수 있었다.


교장이 데카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칠은 아예 의회에 매번 지각하는 지각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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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비난하는 어떤 의원에게 도리어 "당신도 예쁜 아내를 얻는다면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오"라며 서슴지 않고 넉살을 떨기도 했다. 뻔뻔하기 짝이 없다.


처칠과 데카르트는 되고 나는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하나다. 능력 차이다.


재능이 출중하면 그 어떤 약점도 커버가 된다.


능력만 있다면 사회는 그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다 용인해주는 것이다.


아침잠을 탓할 게 아니라 내 박약한 능력을 탓해야 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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