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정치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철학의 왕' 플라톤의 본디 장래 희망은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가 꿈을 접게된 결정적 계기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 때문이었다. 우중정치와 민주주의에 참혹한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정치 대신 철학의 길을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라톤이 정치를 혐오했기에 우리는 가장 위대한 철학을 얻었다.
나는 감히 플라톤의 발톱 때만도 못한 존재지만 그의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유년 시절, 훌륭한 정치가 사회의 부조리를 반드시 개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허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회에서 겪은 여러 추접한 경험들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끈을 붙잡던 정치에 관심마저 끊어 버렸다.
내가 아는 마지막 한국 정치는 참여 정부와 이명박 정권 그 중간 어느메 쯤에서 종결됐다. 이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는 백치에 불과하다.
잡설이 길었지만 사실 최민희 방통 위원장에 대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조금 뜬금없는 면이 없지 않다.
나는 그녀를 잘 모르나 아주 오래 전 우연히 그녀가 집필한 책들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자연주의 육아 방식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쓰여진 그 책의 기저엔 온통 유사과학으로 점철돼 있었다. 굉장히 황당한 인상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 유명한 월간 <말>지의 기자였다는 경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기자들은 원래 이렇게 무식한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글만 쓰던 여인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각고의 노력을 들인 끝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국회의원을 거쳐 방통위 부위원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아마 정확히 잘은 모르겠으나 방통위 부위원장으로서 그녀가 거둔 최대의 업적이자 성과는 <페이스북-인스타 계정 정지 대란> 때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본사 메타를 방문해 항의를 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작 페북 정지 피해의 당사자인 나로서는 최 위원장의 항의가 상당히 고무적이었고 일말의 기대마저 불러 일으켰다. 살다살다 내가 최민희를 적극 지지하다니 정말이지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차관급의 갑작스런 방문에 한국 메타 측은 당황했고 마지못해 미국 본사와 조율해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답을 주었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최 위원장의 방문 이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메타는 묵묵부답이다. 그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 응변에 불과했다는 소리다.
하긴 일개 쿠팡조차도 대한민국 정부를 좆으로 보는 판국에 그보다 수백 배는 훨씬 더 큰 다국적 기업 메타가 한반도의 소국 따위를 어떻게 바라볼 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최 위원장의 방문은 소기의 성과조차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력만큼은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기성 정치인들이 권태로운 타성에 젖어 이용자들의 불만을 애써 무시하고 씹어댄 것과는 분명 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