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그만 신문사에 재직했었을 때 당장 내일 죽어도 별 이상할 것 없는 괴팍한 사장 노인은 매일 일과처럼 내 살집을 공격하며 슬슬 시비 걸곤 했다.
나는 남자이므로 젊은 아가씨들처럼 살 이야기에 그다지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누가 디스 하든 그러든가 말든가란 마인드다.
만사가 귀찮고 둔감하기 짝이 없는 그냥 평범한 한국 남자라는 의미다.
다만 그 노인네가 알츠하이머였다는 사실만큼은 지독하게 끔찍했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마냥 기억이 매일 휘발되니 똑같은 비난과 조롱을 매일 하는 것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면 짜증 난다는데 본인도 스스로 한 말을 까먹으니 매일 똑같은 맹비난을 쏟아냈다.
거의 3년 내내 그 미친 개소리만 반복해서 들으니 어느 순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말하자면 "글 쓰는 사람 중에 살찐 사람은 없다"는 게 그의 오랜 지론이었다.
정신 나간 노인네가 사람을 돌아버리게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냉정하게 말해 객관적으로 그건 맞는 말이다.
나 역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어 본 작가 중에 살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카뮈나 카프카를 보라. 아주 날렵하게 생기지 않았나? 조지 오웰이나 아서 밀러는 날렵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흉 걸린 것 마냥 꺽다리에 비쩍 말랐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나 대문호 이문열 작가는 다소 묵직한 체구를 자랑한다. 풍채가 좋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마저도 젊은 시절에는 날렵한 몸매를 자랑했다. 노년기에 자연스레 보기 좋게 살집이 붙은 케이스에 가깝다.
오히려 그 정신 나간 사장 양반 덕분에 나는 문득 "그럼 살찐 작가는 없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있었다. 가장 대표격 인물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중국의 모옌이다.
다소 부끄럽지만 그의 대표작 <붉은 수수밭>을 읽지는 못했다. 소설 읽기는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논픽션에는 환장하지만 픽션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그러나 모옌의 에세이만큼은 읽어본 적이 있다. 타고난 재담가이자 명징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지 사진의 모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작가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레 우리가 떠올리는 작가의 얼굴이란 대단히 예민하고 감성적일 듯한 그런 인상이다.
하다못해 파트리트 쥐스킨트마저 대머리지만 새초롬하고 애매하게 손가락을 입술에 물법한 다소 오글거리는 인물 사진으로 유명하지 않나.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책 표지 사진을 떡하니 장식한 미남 작가들이 여성 팬심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일 게다.
작가의 미모는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여성들은 사피오섹슈얼에 가깝다. 야성적인 남성을 바라는 반면 동시에 무의식 한켠 지적인 남자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런데 모옌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푸짐하고 후덕한 인상이다. 얼굴형이 모찌떡 같다.
마치 동대문구 신설동역 맞은편에 있는 인심 좋은 호떡 장수처럼 생겼다. 말만 잘 하면 오뎅도 하나 공짜로 더 줄 것 같은 사람 좋은 아저씨의 느낌이다.
게다가 부족한 머리숱을 애처롭게 이마에 덮은 것까지 완벽한 화룡점정이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90년대 후줄근한 초등학교 교감 선생 같은 외모다. 얼핏 보기에 감히 문학과는 접점조차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옌 아저씨에게 더욱 정감이 간다.
푸근하고 친근한 인상의 아시아계 남성 작가를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면면을 보라. 대부분이 굉장히 심각한 인상들 아닌가? 예민해서 군살 없이 마른 몸매에 마치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지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들이다.
예컨대 한강 작가만 봐도 일상에서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인물형이다. 거의 성인군자같은 포스의 인상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처럼 지독하게 조곤조곤한 말투를 가진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어쨌든 정말 말도 같잖은 개 같은 상상이지만 만약 내가 모옌 아저씨를 북경에서 만난다면 중국식 고기 떡을 서로 사이좋게 나눠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