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든 지하철엔 어김없이 스크린 도어가 설치돼 있다. 설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배우 전지현 씨의 출세작이자 오래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봐도 알 수 있듯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크린 도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왜 설치했을까? 서울 지하철 공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남아돌았을까?
이유는 대단히 단순 명쾌하다.
단지 미친놈들 때문이었다.
지하철 선로로 사람을 밀어 죽이는 것이다. 그 종지부를 찍은 게 어느 가정주부의 사례였다.
40년간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이자 한없이 자애로웠던 어느 가정주부를 노숙자가 느닷없이 밀어 버린 탓에 아무 죄 없이 지하철에 허망하게 밟혀 죽었다. "왜 죽였냐?"는 경찰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던 노숙자는 "그냥 심심해서"라고 대답해 세상의 공분을 샀다.
묻지마 살인의 원조격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온 내 경험을 반추하면 언제나 노숙자는 두려운 존재였다.
대표적 부촌인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혹은 한강 이남 8학군 강남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을 무수하게 봐왔다. 그도 그럴 것이 1호선 라인 인근에 주거지가 껴 있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1호선 레전드>라는 컬트적인 영상들이 나도는데 내 학창 시절을 상기하면 그건 그저 순한 맛에 불과하다.
그 시절은 매운 맛을 아득히 초월한 가히 독극물에 가까웠다.
당시 1호선 상황은 그저 웃고 마는 컬트를 넘어 지금 기준으로 형사처벌까지 고려할 만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야무야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관대했고 동시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야만적인 시대상 때문이었다.
(결코 좋지 않은 의미의) 1호선 황금 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종로 3가부터 청량리까지다. 서울이 얼마나 기괴한 곳인지 알 수 있는 온갖 인간 군상의 전시장이자 액기스다.
정말 비극적이게도 내 통학로는 하필이면 그 백미들만 거쳤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정서적 충격과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아직까지 그 끔찍한 기억들이 뇌리 속에 생생하다.
지방에서 돈 주고도 구경 못한다는 1호선 황금 라인의 종착지는 청량리역이다. 다음 역인 회기역부터는 말도 안될 정도로 산뜻해지기 때문이다.
외대, 경희대, 한예종의 교차점이 회기역인 것을 상기한다면 싱그러운 대학생들이 가득하니 온도차가 극단적으로 너무 큰 셈이다.
청량리는 컬트의 상징이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대신한 악명 높은 대표적 사창가 청량리 588이 한때 그곳에 있었고 국립 최초의 정신병원도 청량리에 있었다.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한 가장 유명한 환자는 이중섭 화백이었다.
청량리역은 무수한 행려병자와 노숙인들과, 그리고 지방에서 갓 상경한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항상 복잡한 곳이었다.
중딩 시절 교복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면 종종 노숙인들이 다가와 돈을 구걸했다. 내가 그들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지하철 역사에 서슴지 않고 소변을 갈기거나 한겨울에 알몸으로 나다니거나 역사 내 입점했던 (지금은 사라진)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던 여대생을 난데없이 껴안는 등 기가 막힌 별의별 추잡한 장면들을 보아왔다.
단순 무식한 5공 시절이었다면 노숙인과 행려병자들을 싹 다 모아 어디론가(우리가 충분히 짐작하는 그곳에) 데려갔겠지만 비로소 인권이 정립된 민주주의 시대엔 공권력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 과도기를 소년기에 겪었다.
대상을 일반화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다. 모든 노숙인이 악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한없이 선량해 연민이 드는 노숙자도 있는 반면 사회에 피해만 주는 노숙인도 있다.
불운한 탓에 멀쩡한 가장이 졸지에 노숙자가 된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도 무서운 진실은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장애와 질병, 빈곤, 고립이라는 잔혹함은 바퀴벌레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숨어 있다. 그것이 삶에서 끔찍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노숙인과 행려병자는 사회를 넘어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운이 나빴는지 마주친 노숙인들은 거의 다 질이 좋지 못한 부류였다. 대부분 알콜 중독에 고주망태였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사람들은 그 유명한 '보스' 김태촌이나 조양은, 혹은 사실상 이 나라 최고 수뇌부 삼성 공화국이 아니라 도리어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다.
앞뒤 재지 않고 뒷일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촉법 소년과 노숙인들이 가장 좋은 케이스다. 공포를 모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용맹한 전사들은 메스암페타닌을 섭취한 나치군이었다. 약에 취해 눈에 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총알이 빗발치든 포탄에 사람 사지가 찢기며 죽어 나가든 아무 감흥이 없기 때문에 돌격 앞으로가 가능했다.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동일하다. 공포가 거세된 인간은 언제나 가장 강력하다. 천하무적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