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이

by 다람

약 4년 전에 짧게 사귀었던 여자는 요새 나라를 뒤흔드는 어느 사이비 종교 단체의 열렬한 신도였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시작조차 않았겠지만 이미 정이 통한 상태에서 뒤늦게 인지했다는 게 문제였다.


내 천성 자체가 인연을 맺고 끊는 게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탓에 인생에서 항상 피를 봤다. 그걸 잘 알면서도 참 어렵다.


내 연애 경험은 또래에 비해 매우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간 만난 여자 중 가장 단순한 뇌구조를 갖고 있었다.


평생 제대로 완독해 본 책이 성경뿐이었다. 너덜너덜할 정도로 수백 번을 반복해서 읽었으므로 마치 꾸란을 읊는 무슬림들처럼 그녀 역시 창세기부터 마지막 장까지 줄줄 말할 수 있었다.


최종 학력이 상업고 졸이었지만 사실상 신학교 성경 박사PhD나 마찬가지였다.


자취방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그 와중에 성경 구절을 지껄이기에 밥맛이 뚝 떨어져 숟가락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항상 억눌러야 했다.


동시에 오히려 경이롭다는 감정마저 일었다. 저 한 권만으로 이 복잡다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게 가히 기적 아니고 뭐겠는가?


만물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그녀와 반대로 모든 것을 의심하는 내가 부드럽게 융화될 리가 없었다. 사사건건 부딪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본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에는 개신교 광신도 여성이 설경구와 잠자리 전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마음에도 진짜 기괴하다고 느꼈는데 정작 그걸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한 것이 그녀였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었다면 그 경험을 살려 컬트 영화 한 편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자기계발서에 환장한 스타일이었다. 성경과 자기계발서의 시너지 효과는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상상에 맡기겠다.


성경과 자기계발서를 짬뽕해 성공한 인물이 그 유명한 <꿈꾸는 다락방>의 이지성이다. 내가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해야 잔소리다.


그녀의 방 벽면 빼곡히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는 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김미경 강사와 김창옥 강사의 소위 '어록'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우리는 정말 달랐지만 재미있게도 집에 존경하는 인물 사진을 붙여놨다는 점 하나만큼은 같았다.


내 방 역시 조지 오웰과 파인만, 스피노자와 데카르트, 비틀즈 포스터가 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 존 레논은 생전 예수님을 디스했었고 조지 해리슨은 아예 힌두교였다.

리처드 파인만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자기 계발서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 양반 성향을 인지한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정반대 편 성향들을 방구석 '예쁘게' 붙여놨다는 점에서 그조차 블랙코미디였다.


너무 디스만 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연을 이어갔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가진 천성적인 따뜻함과 유머 덕분이었다.


존나 따뜻하고 존나 웃기니 그 치명적인 매력 때문에 차마 끊어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정신이 올바르더라도 아주 사납고 매정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미가 실종된, 쌀쌀맞기 짝이 없는 이 시대엔 '따뜻함'조차 분명 큰 재능이다.


침소에 누우면 나는 종종 내 운명과 환경을 탓했고 도리어 그녀는 환경 탓을 하는 나를 철저히 비난했다.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모조리 변명이자 핑계로 여겼다. 오로지 노력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필연적인 평행선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과를 볼 때 반드시 패인敗因과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운'을 분석하는 나와, 오로지 전지전능한 신의 초능력을 맹신하는 그녀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 내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언제나 거리낌 없이 내뱉곤 했다. 천성이 악하다기보다는 철저히 무지했기 때문이다. 구성없지만 사람은 좋은 케이스였다.


제일 신기한 지점은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너무나 행복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대가리 꽃밭' 뇌에 주름 하나 없이 청순했다.


본인 뒤에 강력한 '하나님 빽'이 있는데 도대체 세상에 두려울 게 뭐냐 있냐는 것이며 노오력만 하면 모든 게 가능해진다는, 그저 믿는 대로 세상이 펼쳐진다는 유사 과학 <시크릿> 류의 신념이 너무도 강렬하게 각인돼 있기에 도저히 불행할 수가 없었다.


반면 나는 우울증 약을 상시 복용하지 않으면 단 하루조차 버틸 수 없는 중증이었다. 오죽하면 항상 뽕 맞은 것 마냥 행복한 그녀를 보고 차라리 나 역시 사이비라도 한번 믿어볼까라는 말도 같잖은 생각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여자는 쓸 데 없이 너무 건강하고 남자는 정신이 병약한 아주 희한한 커플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둘리 여자 친구 '공실이'와 98% 싱크로율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뜬금없이 그녀 이야기를 꺼낸 건 어제 우연히 둘리를 봤기 때문이다. 오래전 헤어진 그녀가 어디선가 무엇을 하고 지낼지는 오리무중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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