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by 다람

학창 시절 삶과 세상을 비난하며 평생 불평불만만 하던 내게 같은 반 급우가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빌 게이츠의 이록을 넌지시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훗날 드러났지만 결론적으로 그 말은 거짓이었다. 빌 게이츠는 정작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가짜 명언들이 난립하는 시대다.


예컨대 호치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던가 괴벨스가 "내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는 식이다.


완전히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세인들은 유명인이 하지도 않은 말들을 조작해서 그럴듯한 진실처럼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더욱 더 가관인 상황이 벌어지는데 거짓 명언이 마치 시대의 정언명령처럼 떠받들여진다는 것이다.


왜 구태여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런 말을 만들어 지껄이는지 말장난을 하는 이들 심리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를 빌 게이츠의 발언으로 믿었던 건, 실제로 그가 아주 좋은 유전자와 아주 좋은 배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지능과 좋은 환경이 결합하면 오히려 안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운도 탁월하게 좋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빌 게이츠는 본인이 가진 복에 대해 그렇게 겸손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군대에서 귀가 박히게 들었던 말이 <하면 된다>이다.

그런데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에게 여쭤보자. 정말 하면 되는가? 하면 무조건 되지 않는다. 인생과 세상이 그리 단순한가? 차라리 "아무래도 해보면 안 하는 것보다 될 확률이 더 높다"던가 "하면 될 수도 있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군대가 단순무식한 집단인 이유가 무조건 하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이제 갓 입대한 무지랭이 20대 초반 남자애들에게는 그 말이 먹힐지 몰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지혜로운 연륜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면 <하면 된다>가 완전히 의미 없는 말인가? 또 그렇지는 않다. 인간의 뇌란 참 복잡하지만 또 단순하기 그지없어 대단히 오묘하다.


놀랍게도 현실의 초능력이란 일종의 종교적 맹신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진짜로 믿어 버리면 그대로 실행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도 안된다"보다 "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 도전자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투지나 심리적인 면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


<하면 된다>를 앵무새처럼 읊어댔던 집단은 군인들이었고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이 나라의 근대화를 성공리에 이룩했던 주역들도 그들이었다. 기적적인 근대화의 성공 이후 <하면 된다>는 가히 이 시대의 종교로 등극했다.


하면 된다의 최대 비극은 도리어 실패한 이들을 게으르고 무능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논리로 쓰인다는 데 있다.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굉장히 단순무식하고 멍청한 인간들에게 참 유용하게 쓰이는 사상적 도구다.


하면 된다의 반례는 세상에 허다하게 차고 넘친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고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당대에는 실패했지만 죽어서 유명해진 케이스다.


동아시아 3000년 정치 철학의 아버지로 여겨진 공자는 완전히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뜻을 제대로 알아주는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큰 뜻도 펼치기 전에 겨우 서른 셋의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요절했다.


마키아벨리는 심혈을 기울여 쓴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바쳤지만 푸대접과 냉대만 받았다.

위대한 서구 문학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인세는커녕 레판토 해전에서 팔마저 절단당하고 말년까지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 한 많은 삶을 끝냈다.


마르크스는 소련 건국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고흐는 더 이상 설명해 봤자 잔소리다.


그들이 멍청했나? 의롭지 않았나? 전혀! 오히려 정반대였다. 당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의롭고 똑똑했다. 그러나 눈 감는 순간까지 실패만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인생은 포르투나와 비르투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포르투나는 행운의 여신이고 비르투는 본인의 능력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조차 행운의 여신의 냉대를 받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실패자들 역시 포르투나의 외면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보니 인생은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에 가깝다. 내가 아무리 날뛰며 지랄발광해도 최종적으로 모든 건 하늘이 결정한다.


될 것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안될 것도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빈번하다. 잘났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못났다고 다 실패하지도 않는다.


평생 담배 한 번 안 피워 본 가정 주부들이 픽픽 쓰러지며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젊어서부터 온갖 마약만 골라서 한 에릭 클랩튼이 여든을 넘은 현재까지 정정하다. 아주 선량한 인물이 어처구니없게 교통사고로 요절하기도 하고 역으로 사회에 해악만 끼친 추물들이 잘 먹고 잘 살다 천수를 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작가의 이전글폴 매카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