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기대

by 다람


전 세계에서 유독 천재를 추종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일본의 경우는 천성적으로 등급을 만드는 데 탁월하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세계 4대 문명 따위 식 출처 불명의 몇 대 운운은 대부분 일본에서 흘러나왔다. 그 때문일까? 이상한 유사 과학도 아주 기똥차게 만들어 냈다.


그 정서가 일제 강점기 이식된 탓인지 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한국의 천재 숭앙은 일본과는 다르게 보는 편이다. 팬덤 정치와 무속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나라는 언제나 강력한 영웅을 원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해 반드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가히 종교적인 팬덤 정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 대부분의 역사는 지독한 가난과 착취, 수탈, 수천 번의 외침이 야기한 고통의 흔적이었다.


사실상 히틀러를 추종했던 2차 대전 시기 독일 국민과 정서가 비슷하다.


나라를 잃고 수천 년간 지구를 유랑했던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그토록 갈망했듯, 우리 민족 역시 민중을 구원할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나 정 도령 설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아기 장수 우투리는 뜻을 펴기도 전에 죽었고 정도령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정도령 설화를 현대에 가장 잘 이용한 이는 지금은 별세한 故 현대 그룹 정주영 명예 회장이었다. 그는 1992년 대선에서 본인이 정도령의 증거라는 아주 은근한 암시를 던졌다. 물론 대놓고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 시대의 정도령은 천재나 다름없다. 누대에 걸쳐 육체보다 문文을 숭상했던 민족적 기질 탓에 한 명의 천재는 그야말로 가문의 자랑이요. 민족의 메시아다.


천재를 갈망한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누군가가 나서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황우석과 송유근은 우리 민족의 천재 신화 욕구가 반영된 증거였다. 줄기 세포가 모든 장애를 치료해 주기를 고대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줄기 세포는 없었고 황우석은 모든 것이 드러난 뒤 무력할 정도로 담담하게 자백했다.

민중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위대한 희망이 한낱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대단히 슬픈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집단 인지부조화에 걸려 도리어 황우석 줄기 세포를 방영한 PD수첩 MBC 문화 방송을 때려 부수었다. 마치 암 진단을 선고받은 환자처럼 비탄에 빠져 "결코 그럴 리가 없다"며 현실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송유근 역시 민족이 기대를 거는 천재였다. 그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부디 노벨상을 수상하기를 학수고대했다.


이미 우리가 이룩한 평화상과 문학상은 문과에 가깝다. 이과 계열에는 근접조차 못했으므로 이과형 천재에 대한 컴플렉스가 지독했다. 물론 허준이 교수가 필즈 상을 수상해 어느 정도 해갈이 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한 기대는 언제나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욕심이 과했는지 송유근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제는 반대로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부모가 학대했다" 혹은 "지적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송유근이 여전히 천재인지는 불투명하다. 제대로 된 모든 역사적 평가는 반드시 사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송유근은 다행히 아직 어리고 그러므로 가능성이 충분해 훗날 그가 엄청난 무언가를 해낼지, 혹은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범부로 살아갈지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알 수 없다는 게 맞다. 판단을 보류해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지독한 강박증에 시달렸을 확률이 높다.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었을 테다. 교수 집안이 아니라 차라리 이름 없는 범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고민 없이 실컷 뛰어놀았다면 그게 더 행복한 삶이었을 지도 모른다.


장남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도리어 애를 망치는 경우를 역사는 매번 증거한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가 그랬고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그랬다. 그들은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스스로 포기했다. 때문에 전혀 기대가 없던 동생 세종대왕과 이건희가 도리어 역사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홈스쿨링을 통해 천재로 길러졌지만 21살 때 완전히 탈진하고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남들이 이제 막 시작하는 타이밍에 그는 멈춘 것이다.


아이가 총명하고 지혜로울수록 오히려 부모는 애써 기대를 접어야 한다. 지나친 관심과 독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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