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치기

by 다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다. 우리 옛 속담 "오르지 못할 나무 감히 쳐다보지도 마라"는 것이나 당랑거철螳螂拒轍과 궤가 같다. 제 주제도 모르고 무모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구 세계는 동양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편이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비유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에 따르자면 어찌 됐든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다. 제나라 장공의 수레에 대적했던 사마귀와는 차원이 다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조금 유식한 표현을 빌자면 사자성어로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고 한다. 워낙 마이너 한 사자성어라 나 역시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고 3년 전에야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공저자로 참여했던 어느 리더십 서적에 <호치민> 한 파트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이겨낸 월남의 경우를 비유하다가 아주 우연히 이에 대응하는 이란격석을 찾아낸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미 없는 헛짓거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비틀어 보자. 계란을 얼리면 어떨까? 손아귀로도 쉽게 터지는 날계란이 아닌 단단하게 얼린 계란을 투척하면 어떨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워가 세질 것이다. 그렇다면 바위는 깨부술 수 있다.


애초부터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는 전제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계란의 갯수나 투척 횟수, 심지어는 시간제한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


얼린 계란을 10명, 아니 1,000명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던져 때려 박으면 흠집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는 그 단단한 바위도 모래처럼 산산조각 깨부수어진다.


이게 논리적 추론인 이유는 수천 년간 떨어지던 낙숫물이 바위를 뚫은 사례가 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낙숫물보다 얼린 계란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주지한다면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이란격석은 사실 역사에서 그다지 희귀한 경우는 아니다. 당대 세계 최강대국 수나라를 침몰시킨 고구려나 역대 '제국들의 무덤'이었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앞서 밝힌 프랑스와 일본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란격석은 비단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1995년, 펩시는 미 전역에 다소 골 때리는 광고를 하나 올렸다.


펩시 콜라 1,680만 캔을 마시면 그 포인트를 받아 해리어 전투기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10캔만 마셔도 4,600년이 걸리므로 그때까지 펩시라는 회사는커녕 인류가 존재할지도 알 수 없으니 그냥 막 던진 마케팅이었다. 정작 본인들도 말도 같잖다는 걸 알면서도 오로지 얄팍한 홍보 효과만을 노린 셈이다.


"설마하니 어떤 미친놈이 그걸 하겠냐?"라는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말 그걸 해낸 '미친놈'이 있었다. 당시 시애틀에 살던 21살 대학생 존 레너드가 그 주인공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펩시 콜라 1,680만 캔의 가격보다 해리엇 전투기가 수백 배나 비싸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게다가 펩시는 어처구니없게도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는데 '포인트를 현금으로 구매 가능하다'라는 멍청한 문구를 적어놨던 것이다.


당시 기사에는 <레너드가 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돈을 마련해서 1996년 3월 28일에 콜라 36통(15포인트)과 70만 달러짜리 수표가 담긴 편지를 펩시로 보내고 해리어 전투기를 요구했다>라고 적혀 있다.


그야말로 펩시는 뒤집어졌다. 차마 상상조차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강력한 힘을 이용해 치졸한 심리전을 벌이기도 하고 어르기도 달래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거대 제국 펩시가 채 여드름 자국도 안 가신 21살짜리 대학생에게 발목 잡힌 장면은 미 전역에 생중계됐고 대중들의 엄청난 호기심과 재미를 자극시켰다.


"그냥 웃자고 한 농담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는 펩시 측과 "대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냐?"는 레너드의 전쟁 같은 기나긴 소송 끝에 미 법원은 펩시의 손을 들어줬다.


"광고의 내용이 사기죄의 혐의는 존재하지만 죄를 물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펩시가 해리어 전투기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패소한 레너드는 패가망신했을까? 전혀! 그는 미국민의 일약 대스타가 됐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액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펩시 측에서 보상의 의미로 거액의 뒷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선 이긴 셈이다. 세계적인 기업 펩시는 체면을 다 구겨 국제적으로 개망신을 당했고 레너드는 거액을 챙겼음은 물론, '골리앗과 싸워 이긴 현대판 다윗'이 됐다.


이게 어디 펩시만의 이야기일까? 모든 강자는 반드시 빈틈과 헛점이 있다. 지구상 그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일지라도 말이다. 인류 최강대국 미국을 무릎 꿇린 호치민이 증거했고 펩시를 가지고 놀았던 풋내기 대학생 레너드가 증거했다.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는 서울대도, 대한민국 정부도, 구글도, 삼성도, 애플도, 페이스북도, 끝내는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과 중국도 반드시 헛점이 있다고 추측한다. 아주 사소한 헛점 때문에 대제국이 멸망하는 케이스를 종종 본다. 서구 세계의 정신적 요람 그 거대한 로마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도 몰락했다.


그러므로 "언제나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붓다의 제행무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진군을 멈춘 것은 대제국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도 아니고 인도 왕국도 아니었으며, 한나라의 황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다름 아닌 모기였다.


역사학자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사인死因을 말라리아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를 통일하겠다"는 이상은 다른 거대한 제국에 의해 좌절된 것이 아니라 겨우 모기에 뜯겨 서른셋의 요절로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그 위대한 이름을 알던 당대 그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이처럼 정말 예상치도 못한 사소한 것이 거대한 힘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개 평범한 범부가 초거대 압제 권력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작가의 이전글천재와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