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지금까지 뵌 어른들은 종종 "담배는 백해무익이니 끊고 술은 적당히 하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적당한 술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를 해제시킨다.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다.
마치 빈틈 하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인간도 취기에 종종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감 어린 반응에 정서적 연대가 느껴져 그전까지 일면식 없던 사람이 졸지에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인생 선후배가 되기도 한다.
남녀 관계는 더 하다. 맨정신엔 어색하니 데면데면하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놀랍게도 취기에 본능적 스파크가 터져 모텔로 직행하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클리셰가 '떡치는 내용으로 가득한' 홍상수 영화에 허구헌 날 괜히 술자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성 간의 거사를 치르기 위해선 술은 절대적 필수다.
예컨대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주 멀쩡한 맨정신으로 이성과 대화하다가 남자가 뜬금없이 "섹스하실래요?"라고 물어보면 뺨을 맞거나 신고를 당하기 딱 좋다. 성범죄자로 구속되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술은 안될 것도 되게 만드는 초능력을 일으킨다. 자기도 모르게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레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성과 술자리를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내가 무슨 공자마냥 올곧은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이성과의 술자리가 두렵기 때문이다.
여자를 못 믿는 것이다.
물론 내가 차은우 씨처럼 이성에게 무슨 엄청난 성적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기껏해야 걸쭉하고 쓰레기 같은 한심한 농담이나 지껄이며 깔깔대다가 '전혀 아무 일도 없이' 유치원생처럼 사이좋게 빠빠이 헤어질 테니 사실상 의미가 없다.
어차피 뚜렷한 성과(?)도 없을 테니 시도조차 안 한다. 그러니까 내 욕망과는 달리 본의 아니게 미국식 '펜스룰'을 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졸지에 독수공방 성인 군자 같은 삶을 산다. 그런 삶이 행복할지 행복하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내가 오로지 인사불성이 되어 만취할 때는 불알친구-죽마고우들과의 술자리 뿐이다.
어른들 말씀대로 담배는 백해무익하고 적당한 술은 유익할까? 딱 절반만 맞다고 본다. 극도로 쇠약해진 노년기가 아닌 이상 적당한 술을 즐기는 이는 많지 않다.
기계적인 삶을 살며 엄청난 절제를 했던 칸트도 아니고 딱 주량만큼 마시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술자리 분위기에 따라 때로는 주량을 넘기기도 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것이다. 특히 혈기 왕성한 청춘일수록 조절이 힘들다.
물론 술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MZ 세대의 요새 트렌드에 따라 그것도 점차 옛말이 되고 말았다.
보건복지부가 그토록 입이 닳도록 강조하듯 담배엔 수천 가지의 해악 물질이 담겨 있다고 한다.
때문에 담배갑에는 언제나 공포심을 조장하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시꺼멓게 썩은 폐나 구강암 환자, 혹은 후두암 사진을 박아 넣는 식이다. 우리 민족의 창의성이 아니라 온전히 외국의 사례를 베꼈다.
사실상 협박인데 애연가나 끽연가에게는 그저 개소리로만 여겨진다. 그나마 그들이 가장 두려운 건 정작 썩은 폐보다 발기부전이라는 사실이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음주 운전은 있어도 흡연 운전은 없다는 것이다.
흡연하고 운전을 했다고 감옥에 쳐 넣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술은 인간의 판단력과 인지를 왜곡시켜 흐리게 만들지만 담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외려 담배를 피우면 정신력이 또렷해진다.
술은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며 극대화 시키고 담배는 반대로 정서를 차분하게 침잠시킨다. 흡연을 했다고 자동차를 갈지자之字로 운전하지는 않는다. 또한 담배는 술처럼 이성을 마비시키지 않는다.
술에 만취하면 폭력은 물론, 성범죄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물건을 때려 부수기도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평소엔 아주 멀쩡한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술 마시다 홧김에 살인하는 일도 일상에서 심심찮게 벌어진다. 무수한 신문 기사들이 증거하지 않는가?
사람들 말마따나 "술을 먹으면 본성이 나온다"가 맞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술에 취해 맛이 가면 반드시 미친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사회 입장에서 볼 때 과도한 술은 대부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담배는 온전한 자살에 가깝다.
담배가 타인을 해하는 경우는 산불을 내거나 조폭이 피해자를 담배불로 지지는 것만 제외하면 오로지 간접흡연뿐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중장년층, 특히 노인들이 걸어가며 흡연을 하는 야만적 길빵을 저지르곤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더러 아주 미개한 행동이다. 그러나 참으로 관대하기 짝이 없는 우리 법은 이를 제지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하다가 갑자기 뽕 맞은 것마냥 눈깔이 돌아가 강간을 했다거나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내 평생 지금까지 들어 본 역사가 없다. 반면 술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강력 범죄들을 야기했다.
이쯤 되면 술이 위험한지 담배가 위험한지 도리어 의문을 제기해야 할 판이다.
담배가 백해무익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도대체 지구상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한다는 말인가? 최소한 맛이라도 있으니까 피우는 것이다. 차분함과 감정의 고양은 덤이다. 심지어 카타르시스마저 느끼는 경우도 빈번하다.
식후땡이나 섹스 후에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가장 좋은 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진정한 백해무익은 '똥'이다. 똥을 먹는 사람은 없다. 아주 끔찍한 악취가 날뿐더러 영양가는커녕 그 자체로 엄청난 독성 물질이다. 당연히 내가 그것의 맛을 봤을 리는 없겠지만 그저 아주 역겨운 맛일 것으로 대략 추정할 뿐이다. 차마 상상조차 하기 싫다.
토사물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동물만이 인간의 토사물과 대변을 섭취한다.
아! 잠시 깜빡했다. 모든 것엔 예외가 있듯 대변을 섭취하는 인간도 아주 희귀한 예지만 분명 존재한다. 고래古來로부터 판소리 명창들이 목소리가 잠길 때 애용했다던 뒷간에서 퍼 온 똥술이 그렇고 이성의 대변에 강렬한 성욕을 느끼는 '스카톨로지' 따위 기이한 이상성욕이 그것이다. 위대한 천재 모차르트가 스카톨로지의 대표 인물이다.
물론 그들은 지구상에 한 줌조차 안되는 극히 드문 케이스일 테다.
그것에 비해 담배는 단순히 백해무익이라 치부하기엔 굉장히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나마 죄과를 묻는다면 "나는 나를 죽일 권리가 있다"는 수준에 머문다. 물론 흡연이 야기한 각종 질병으로 보건복지부 예산이 과도하게 지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음주가 일으키는 온갖 흉악 범죄에 비하면 그저 새 발의 피,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인간 말종 조두순이 천인공노할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음주를 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
흡연이 백해무익이라면 정신을 잃은 과도한 음주는 단 한 방에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흡연이 기관총이라면 만취는 핵무기와 같다. 너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엄청난 재앙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