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 인물은 데카르트였다. 현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데카르트의 소환이 강력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무려 20년 전만 해도 싸이월드 발發 전 국민적 뽀샵질이 대유행했고, 각종 고전적 수법의 사기는 물론이며 만성화된 보이스 피싱, 심지어는 AI 딥 페이크까지 이제는 보이는 것조차 결코 믿을 수 없다.
하다못해 해사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보정'이라는 미명 하에 실제와는 완전히 딴판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무턱대고 정과 신뢰 하나만으로 믿어줬던 지난 시대의 뜨거운 덕목은 이제는 아득한 환타지가 되고 말았다.
이성 관계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순간적 욕망을 못 이겨, 혹은 오로지 욕망에 충실해 원나잇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군상들을 경멸하기보다는 외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거리낌 없이 몸을 섞을 수 있을까?
불치병인 에이즈나 매독, 헤르페스 2형을 위시한 성병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간 무고에 의한 악질적 고소의 위험까지 도사려 있다. 이는 물론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지만 아예 근거 없는 생각만은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향방까지 결정하고 마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보아왔다. 속된 말로 신세 조진 남자들을 많이 봤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해피엔딩일 경우 즉흥적 일회성 육체적 관계가 훗날 다정한 연인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원나잇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에 가깝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앞뒤 재지 않는 도전 정신에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천성이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여전히 고독한 독수공방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첨언한다. "최후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너마저도 의심하라" 종국적으로 스스로의 존재마저도 의심하라는 의미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쯤 되면 정신적 아노미 상태가 온다. 그는 존재 의심을 위한 여러 서사적 가설 장치마저 나열했다.
이쯤되면 의심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심'을 조금 유식한, 있어 보이는 단어로 표현하면 '회의주의'다.
설령 데카르트가 회의주의의 시조는 아닐지언정 본격적으로 회의주의의 장을 연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그를 대표하는 문구 자체가 의심이니 말이다.
정작 '의심의 끝판왕' 데카르트의 종교가 가톨릭이었다는 사실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양반이 가장 본질적인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을 여러 인텔리들에게 던져 봤지만 시원한 답변은 그다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데카르트 전공자들조차 "데카르트의 종교가 왜 가톨릭인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전후 사정을 잘 모르고 어설프게 함부로 지껄이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