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천재

by 다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필즈상과 클럽의 유일한 공통점은 나이 제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찐따인 천성상 나는 물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클럽을 가본 역사가 없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혹여나 나이값 못하고 클럽에 간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그들만의 전문 용어로 '입구 컷'당할 것이다.


아마도 문지기인 경호원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압적으로 경고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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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이보쇼. 아재요. 안 받아요. 돌아가세요."


필즈상도 비슷하다. 40살이 넘으면 설령 라마누잔, 폰 노이만 뺨치는 수학 천재라도 바로 '입구 컷'당하는 것이다.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늦깍이 만학도 천재들에게는 다소 억울한 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씨의 필즈상 수상은 민족적으로 대단한 지적 성취라 볼 수 있다.


자타 공인 그는 국가의 자랑이다.


나 역시 그의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애써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너무도 기뻐했던 1인이다.


다만 한 가지 찝찝한 부분이 있다.


앞서 서두에 밝힌 것처럼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다. 한국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혈통은 조선이지만 기실은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검은 머리 외국인과 같다.


비슷한 케이스가 쿠팡의 창립자이자 사실상 인간 말종 개새끼로 유명한 김범석 씨다.


그 역시 피만 한국인일 뿐 국적은 미국인이다. 한국의 정서를 조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나라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민족의 자랑'이자 '위대한 수학 천재' 허준이 씨 역시 현재는 미국인이다.


허 씨의 양친은 알아주는 인텔리 지식인이다. 애초부터 출신 자체가 우리는 상상도 하기 힘든 스탠포드 박사 학위를 받은 명문대 교수 자제였다.


게다가 그의 양육 환경은 살인적인 교육열로 악명 높은 8학군에서 시작됐다.


평범한 범부에 비해 분명 유리한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집안의 풍족한 부와 가문의 탁월한 지적 전통, 훌륭한 인프라 환경 등, 이 삼위일체가 그의 유년기 지성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부정하기 어렵다.


더불어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온갖 부조리와 똥 군기,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 군대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혹은 못했다는 점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의 인생과 민족의 입장에서 축복이었을 수도 있겠다.


청춘의 2년을 고스란히 어리석게 허비했다면 엄격한 나이 제한이 있는 필즈상을 받을 확률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떨어졌을 테니 말이다.


이 글의 행간을 읽다 보면 내가 마치 허준이 씨를 맹비난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정반대에 가깝다.


외려 그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국적마저 태평양 건너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나는 좌절한 저주받은 천재를 원치 않는다.


세상과 단절돼 히키코모리처럼 방구석에 쳐박혀 하루 종일 미친놈처럼 고독하게 사방팔방 수학 수식을 적어대며 우울증 약을 상시 복용하는 비극적 천재를 바라보는 것만큼 서글프고 끔찍한 일은 없다.


그런 면에서 허준이 씨의 선택은 매우 현명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탁월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모가 제아무리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줘도 애초부터 타고나길 자식이 천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앞서 다소 유리한 지적 환경이 허준이 씨의 지성을 구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본질적으로 이를 견인한 건 본인의 탁월한 두뇌 덕분이었을 것이다.


온전히 부모빨에만 의지하지 않은 본인의 능력이다. 그 정도면 애초에 뭘 해도 될 놈이었다는 뜻이다.


종종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 환경만을 탓하며 정작 저열한 제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조차 없는 그런 핑계주의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지점은 하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운명의 저주처럼 팔자가 기구하여 온갖 불행과 고난을 겪고 끝내 이를 극복한 천재의 서사를 보고 싶은 욕망만큼은 있었던 것이다.


이 역겨운 조선 땅의 모든 부조리들을 모조리 온몸으로 받아내며, 부도옹처럼 끝끝내 일어서 거대한 지적 성취를 이룬 그런 천재를 보고 싶었다.


지독한 환경적 불리함과 무지성에 가까운 이 나라 국민 정서의 횡포를 이겨내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 이겨낸 그런 천재를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일어난 '한국판 라마누잔'을 보고 싶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나이쯤 되면 나는 알고 있다. 현실은 지독하게 냉정하며 극도로 냉혹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의 욕망은 한낱 헛된 환타지에 불과한 것이다. '동유럽의 기적'이라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동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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