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씨

by 다람


나는 김제동 씨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꽤나 유치하다고는 느낀다.


과거 2000년대 초중반 싸이월드에 너 나 할 것 없이 공유했던 <김제동 어록>을 볼 때마다 정말이지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나라 대중 수준에 대해 엄청난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다. 사실 그때부터 쎄한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단순하게도 결코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화舌禍 따위는 있을지언정 동료 연예인들이 밥 먹듯 저지르는 그 흔한 음주 운전조차 한 적이 없다.


그 어떤 형사 사건에 휘말린 적도, 천인공노할 윤리적 죄를 저지른 적조차 없다.


외려 옆집에 살았다면 살갑게 인사하며 지내는 선량한 이웃이었을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나마 그에게 최소한의 죄과를 물을 수 있다면 박약한 논리와 형편없는 지적 수준이다.


그러니까 어설픈 좆문가의 이미지에 가깝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어느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수십, 수백만 명의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명인들의 발언만큼은 다소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가 여과 없이 그대로 정서에 이식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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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그는 어느 강연장에서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같다"는 희대의 궤변을 설파했다.


차라리 "직업의 귀천은 없고 판사의 노동과 목수의 노동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했다면 그다지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다르다. 판사의 망치는 사회적 타살을 야기할 수 있는 반면, 목수의 망치가 사람을 죽이기는 웬만해선 대단히 힘들다.


물론 선무당 같은 어설픈 목수가 집을 엉망진창 개판으로 지어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목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판사의 망치가 사람을 죽인 가장 유명한 사례는 '마광수 필화 사건'이다.


재판정의 구태적인 그릇된 판단으로 마광수는 순식간에 한국 사회에서 투명 인간이 되고 말았다.


<즐거운 사라>를 쓴 이유로 전과자가 된 후 연세대에서 나오던 교수 연금마저 끊기며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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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죽음은 어쩌면 자살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김제동 씨가 목에 핏대를 바짝 세우며 좌중 앞에서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같다"고 일갈하면, 왠지 멋져 보이는 느낌이 조금이나마 들 수는 있다.


사실 관계를 떠나 상당히 시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낭만적인 느낌마저 든다.


마치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같은 인상까지 풍길 정도다.


그는 언제나 '있어 보이는' 궤변들을 자주 강연한다. 굳이 선배 개그맨 이경규 씨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을 애써 빌릴 필요도 없다.


김제동 씨의 궤변이 여전히 대중에게 잘 먹히는 이유는 천부적으로 화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말 재주 하나는 타고난 사람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 재주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선동을 할 수 있겠나?


선동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김제동 씨를 '까는' 사람들은 물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론자도 많지만 상당수가 그의 학력을 걸고넘어진다.


"감히 전문대 출신이 뭘 알겠느냐?"는 식이다.


내가 반드시 장담컨대 만약 김제동 씨가 서울대 출신이었다면 아마 지금의 디스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고학력에 기반한) 영향력과 파급력도 더 강했을 터이니 사회적으로 더 위험한 상황이었을 테다.


모르겠다.


내가 김제동 씨였다면 그렇게 욕먹을 시간에 차라리 해외 유학을 알아보겠다.


굳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학력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심증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계명 전문대에서 4년제 성공회대로 편입한 것이 그 대표적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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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제동 씨는 해외 유학하기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다. 일단 가정이 없다. 심지어 그 스스로 밝힌 대로 '무성욕자'에 가깝기에(진위 여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자식은 커녕 여자친구조차 없으니 신경 쓸 식솔이 없다.


게다가 공부는 '돈'인데 그의 재력은 일반 직장인 수준을 일찌감치 아득히 넘어섰다. 담배는 좀 피지만 술도 안 마시고 독서만 하는 밋밋한 삶을 산다는데 이보다도 더 훌륭한 조건이 없다.


학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중년들이 선뜻 명문대 입시 공부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화로 인해 굳은 머리는 둘째치고 딸린 처자식과 언제나 부족한 돈, 그보다 훨씬 더 부족한 시간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김제동 씨는 복을 아주 한가득 받은 셈이다.


내가 김제동 씨라면 아예 꿈을 웅장하게 키워 아이비리그를 알아보겠다. 그 좋은 머리와 넘치는 돈으로 넉넉잡아 10년을 각 잡고 공부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우리 헌법에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미국 헌법에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예일대나 하버드 법대는 어떤가? '헌법 조무사'라고 주구장창 조롱이나 당할 바엔 그게 더 낫지 않은가?


다시 한번 장담컨대 약간의 상상 회로를 돌려 만약 김제동 씨가 아이비 리그를 졸업하고(물론 그럴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지만) 귀국하면 그를 잘근잘근 씹던 안티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아가리를 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나라는 언제나 유구한 학벌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다. 연대나 고대보다 서울대의 말이 공신력이 높고 서울대보다 하버드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게 이 나라의 암묵적 룰이다.


게다가 그가 서구 세계의 지성 최전선을 접하고 돌아오면 세계를 조망하는 시야와 지적 수준이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므로 그의 주장과 발언에 탄탄한 논거가 기반할 것이며 엄청난 힘이 실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전원책 변호사에게 방송 중 '소비에트' 운운 따위로 개털릴 일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감히 남의 일에 왈가왈부 오지랖 떨 권리는 없다. 남이사 떡을 치든, 외제차를 몰든 내가 뭐라고 주제넘게 조언하겠나.


다만 나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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