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희망이다

by 다람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종이, 화약을 위시한 중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4대 발명품일까? 아니면 바퀴,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AI?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규정하는 최고의 발명품은 '인간'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주체사상의 첫 문장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이다.


철학자 황장엽 씨가 얼기설기 조합한 조악한 저 북괴의 사상일지라도 단순히 주적 개념을 떠나 적어도 이 문장만큼은 내 심장을 강렬하게 울린다.


반드시 인간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현존하는 모든 발명품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나고 정교한 것일지라도 그저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809년 미국 켄터키 주에는 어느 주정뱅이 남자가 있었다. 항상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엉망진창이었지만 그에게는 해학적 재담이라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그리고 남자는 그 와중에 빈궁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아이를 하나 낳는다. 결코 좋은 아버지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분명한 건 아이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정하게 해주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 엉뚱하고 재기 발랄한 이야기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뇌가 말랑말랑하던 아이에게 이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먼 훗날 그 아이는 놀랍게도 미국 제16대 대통령이 된다. 다름 아닌 미국의 국부로 불리우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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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주정뱅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이야기와 농담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남북전쟁 시기 과업으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 와중에도 실없는 농담을 쏟아내던 링컨의 기질이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깡촌, 그저 촌로에 불과한 가난한 주정뱅이 남자의 최대 발명품은 다름 아닌 '아들 링컨'이었다.


그로부터 근 100년이 흐른 1918년, 같은 나라 미국 뉴욕 주에는 어느 3류 세일즈맨 남자가 있었다.


영업도 신통치 않아 매번 허탕만 치던 불우한 남자. 말 주변도 부족하고 인맥 관리에도 서투른 이 유대인은, 역시 링컨의 아버지처럼 가난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아이를 하나 낳는다.


세일즈맨은 남몰래 원대한 꿈을 꾸었다. 내 아이만큼은 위대한 과학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남자는 당시로서도 저학력에 불과했기에 과학에 대해 별달리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어딘가 독창적인 구석이 있었다. 당대 주류에서 약간은 엇나간, 특이한 발상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어느 날은 남자가 사랑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런 말을 남긴다. "얘야. 교황과 일반인은 단지 모자 하나 차이뿐이란다" 세상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너만의 당당한 주체적인 '곤조'를 지킬 것을 주문한 것이다.


마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듯 아이는 훗날 대과학자로 거듭난다. 그 이름도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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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이 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든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뉴욕주 빈궁한 3류 세일즈맨의 최대 발명품은 아들 파인만이었다.


이번에는 장소를 태평양 건너 한반도로 이동해 보자. 일제가 태평양 전쟁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던 1934년, 경성-서울에서도 꽤나 멀리 떨어진 시골 오지, 충청남도 아산에서 신기한 장난감을 팔던 남자가 있었다.


그의 호기심은 분명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장난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팔리지 않으니 재고는 쌓여만 가고 결국 버티다 못해 처참하게 망하고야 말았다. 뿐만 아니라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손을 대는 일마다 모조리 실패했다.


따뜻하고 선량했지만 변변찮고 무능한 남자. 그는 평생 좌절만 하던 불행한 인간이었다. 되는 게 없던 시절, 뜻밖에도 예상치 못한 아이가 태어난다.


놀랍게도 아이는 아버지의 엉뚱함과 왕성한 호기심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동시에 평생 좌절과 실패만 했던 아버지의 슬픔을 똑똑히 기억했다. 한국 인문학계의 거장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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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실패만 한 남자는 그럼에도 하나만큼은 분명히 성공했다. 한국 최대의 지성인 "아들 이어령"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처참히 실패했던 아버지들은 위대한 발명품들을 잉태했다.


인간이라는 위대한 발명 말이다.


물론 인간을 한낱 공산품으로 치환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더불어 위대한 발명품이 있다면 역으로 최악의 발명품도 있다.


히틀러나 폴 포트 같은 인간 백정 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온갖 흉악범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 희망인 까닭은 지구상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사유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훌륭한 도구도 결코 사유하지 못한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AI가 언젠가 비로소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의 고유한 능력마저도 무력화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여전히 사고 능력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박노해 식의 그 허울 좋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외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간이 위대한 까닭은 전무후무한 문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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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억 년 장구한 지구 역사 중 문명을 만든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끊임없는 개선과 척박한 환경에 도전하는 응전의 중추에는 오로지 인간의 생각이 있었다.


나는 먼 훗날 인류의 뛰어난 지력은 협소한 지구와 태양계를 넘어 종국에는 우주를 장악하고 지배할 것이라 결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고 지난 오랜 역사가 다름 아닌 그 증거다.


저출산 시대가 비극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처럼 '위대한 발명품'들이 등장할 기회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류의 고질적인 난제를 극복하고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 무수한 천재들, 인재들이 태어날 수조차 없다는 것은 대단한 비극이다.


만약 이 시대가 학자들이 경고하는 대로 '인류세'의 마지막이라면 그 원인은 오로지 저출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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