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

가장 '후지필름 다운' 후지필름의 새로운 카메라, X-Half

by thesallypark

날짜: 2025년 5월 23일 금요일 오후 1시 8분 (회사 연차 내고 갔다 왔다)

시간: 12분 25초

장소: 을지로에 있는 TLW/트리라이크스워터 (@treelikeswater)라는 사진집을 다루는 독립서점 가는 길에서 나눈 대화



사진 찍는 사람: 필름의 스탠다드를 라이카가 만들었어. 정확히는 오스카 바르낙 (Oskar Barnack, 1879년생)이라는 독일 사람이 라이카에서 135 영화용 필름 (*35mm의 대표적인 필름 포맷)을 대중화시킨 거야. 이때의 필름, 이 사진 한 장의 크기가 필름의 스탠다드, 즉 사진 규격의 표준 크기가 된 거야. 이 크기로 디지털 센서를 똑같이 만든 걸 풀프레임이라고 하고, 풀프레임보다 조금 더 작게 만든 크기를 크롭 사이즈라고 하는 거야. 하프 프레임은 135 필름을 반으로 나눠서 2장을 찍는 크기야. 이 센서라는 게 크기가 클수록 빛을 받아들이는 양이 많아지게 돼. 그럼 결과물이 더 깔끔하거든. 근데 카메라 시장에서 이미 캐논, 소니, 니콘이 풀프레임 센서 시장을 다 잡아먹었거든. 후지필름은 여기서 후발주자가 된 거야.


글 쓰는 사람: 후지필름이 자기들만의 색깔이 담길 수 있게 전용 센서를 개발했다며?


사진 찍는 사람: 맞아. 그래서 후지필름은 "우리는 필름을 만들던 회사니깐 이 필름 세계만의 독자적인 색감을 대신 구현하겠다" 해서 후지필름에서 쓸 수 있는 필름 시뮬레이션이라는 게 있어. 이건 필터 이름이야.


글 쓰는 사람: 필름을 'simulate' 한다는 건가? 필름처럼 보이게끔.


사진 찍는 사람: 원래 다른 카메라 회사들이 쓰는 센서 배열이 다 똑같거든. 다 RGBG 배열이야. 소니에서 제작해서 다른 카메라 회사에 공급하기도 하고, 캐논은 또 독자적으로 생산하기도 해.


*여기서 잠깐!

RBGB 배열 또는 베이어 패턴 (Bayer Filter): 필터 패턴이 녹색 반, 빨간색 1/4, 파란색 1/4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살짝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왔는데...) 카메라 센서에 이 RBG, 즉 레드, 블루 그린이라는 3가지 고유 색상의 빛을 허용하는 컬러 필터를 배치하는 것을 베이터 패턴이라고 한다. 찾아보다가 디지털카메라에서 사진 찍을 때 누르는 셔터 버튼, 그걸 누르면 빛에 노출되면서 '전기 신호'로 저장한다고 한다 부분에서 점점 더 머리가 아파오고...(이 설명을 내가 다 이해한 건 아니다...) 너무 어려워서 결국 사진 찍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 RGBG랑 베이어 패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날로그적인 빛의 색기를 디지털 신호 (이게 전기인 듯)로 변환해서 색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글 쓰는 사람: 뭐야, 그린이 왜 두 번 나와?


사진 찍는 사람: 아 원래 2번 들어갈 거야.


*여기서 잠깐!

G가 2번 들어가는 이유: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구분하는 색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과 시력 검사할 때 그린이랑 레드 그게 있는 건가...) 사람의 눈이 빛을 엄청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건데, 그린이 이 빛의 밝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색상이다. (아... 너무 깊게 들어가는 나 자신...)


사진 찍는 사람: 아무튼 다른 회사들은 저 센서가 동일한데, 후지 필름만큼은 저 센서 자체가 아예 다른 거야. 후지필름은 'X-Trans'라는 센서를 써서, 배열/패턴 구조가 완전 독자적이고 저 초록색 센서 양이 더 많아. 그러니까 한 마디로 초록색을 엄청 잘 표현해 준다는 거야, 후지필름이.


글 쓰는 사람: 그러니까 후지필름은 원래부터 필름이라는 걸 개발한 히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거네.


사진 찍는 사람: 맞아. 그래서 후지만의 색감이 따로 있는 거야. 그래서 전문 사진작가들은 찍힌 사진만 봐도 후지 카메라를 썼는지 안 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얘네는 색의 개성이 굉장히 강해. 특히 특정 필터에서 후지만의 색감이 더 강하게 드러나기도 해. 예를 들면, 클래식 네거티브 필터 같은 거.


글 쓰는 사람: 과거에 어떤 것을 했는지가 다 미래랑 이어지네. 어디서 시작됐는지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 내가 과거에 했던 일들이나 경험이 결국 현재와 미래의 나와 연결되는 것처럼, 카메라 회사들도 그런 것 같네.


사진 찍는 사람: 후지는 풀프레임 시장 자체에 전략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거야. 대신 APS-C (Advanced Photo System type-C) 크롭 규격이랑 중형 포맷 GFX (Graphics) 시리즈에 집중했어. "사람들이 찍고 싶은 감성을 대신 주겠다" 이런 느낌으로 얘네들은 제품을 만들거든. 원래 디지털카메라는 버튼도 엄청 많잖아. 기능도 엄청 많고. 근데 후지는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이 촬영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줄게" 이러면서 버튼을 막 다 빼버려. 기능도 다 줄이고. 그래서 진짜 극단적으로 셔터랑 필요한 버튼 몇 개만 있고 다른 게 아무것도 없어. 이를테면 셔터 스피드나 ISO 조절 버튼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노출의 3요소 중 하나로 감도, 즉 빛에 대한 민감성을 의미)을 아예 카메라 상단부에 달아두기도 하고, 각종 조작 버튼을 최소화 해서 결국 촬영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야.


글 쓰는 사람: 오! 완전 미니멀리즘 그 자체잖아!


사진 찍는 사람: 이 후지만의 특성이 더 잘 드러나는 카메라가 바로 올해 6월 출시 될 카메라야.


글 쓰는 사람: 뭐야, 그럼 왜 이제야 이번 신상 카메라에 이 후지만의 특성이 더 담긴 거야? 이전에는 이런 특징이 안 담겼어?


사진 찍는 사람: 이전에도 다 담겼었지! 이번에는 더 담겼어. 버튼이 더 빠졌어. 예를 들어, 셔터를 누를 때 필름카메라처럼 와인딩 레버를 (*손으로 돌리는 부분) 감아줘야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만들었어.


글 쓰는 사람: 이번에 새로 나온 후지 카메라 이름이 뭔데?


사진 찍는 사람: X-하프.


글 쓰는 사람: 아, 아예 그 센서 크기를 이름에 박아버렸네. 이거 얼만데... (120만 원대라고 했다...)



*여기서 잠깐!

후지필름의 X-하프: 하프 프레임 디카. 후지필름 사이트 공지사항에 2025년 5월 22일에 올라왔다. "이 카메라에는 필름 사진 느낌의 컬러 및 질감을 재현하는 후지필름 고유의 ‘필름 시뮬레이션’과 ‘그레인 효과’를 비롯해 빛샘과 할레이션 효과를 담은 새로운 필터들이 추가" 되었다고. 게다가 찾아보니까 이 카메라 전용 앱 ‘X half ’도 있는데 카메라와 블루투스 페어링을 하면 사진과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전송 가능, 인스탁스 링크 시리즈 스마트폰 프린터로 이미지를 전송할 수 있다고 한다. 필름 사진의 경험을 시뮬레이션하는 ‘필름 카메라 모드’가 있다.

사진 찍는 사람과 이 대화를 하고 난 후에 신상 카메라 설명 글을 읽으니깐 완전 이해되는 이 느낌! ‘날짜 스탬프’ 기능도 탑재되어 있어 필름 사진처럼 사진과 영상 우측 하단에 날짜가 표시된다고 한다. 왜 필름 카메라의 특성이 디지털카메라에 담겼다고 하는지를 알게 된 사항은, 이게 디지털 환경에서 필름 사진의 촬영 방식을 재현하는 거라서 촬영 시작 전에 필름 시뮬레이션과 촬영 매수를 선택하면, 진짜 필름 카메라처럼 모든 촬영이 완료될 때까지 사진을 확인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한마디로 필름 카메라처럼 필름 한 롤의 숫자만큼 사진을 찍기 전에는 결과물을 볼 수 없게 하는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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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사람: 이 카메라에 라이트 리크 (light leak)라는 빛샘 기능도 있어. 왜 저번에 필름이 빛을 받으면 탄다고 했잖아. 이게 카메라에 필름이 장착되는 부분은 암실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암실 스펀지가 오래됐거나 바디 부위에 크랙이 생겨서 암실 내부에 빛이 들어오면 필름이 빛을 받아서 타버리는 거야. 그럼 사진을 현상할 때 결과물에 이 현상이 드러나게 돼. 그러면 사진이 막 빨갛게 나와. 이런 현상을 하나의 효과로 구현한 거지.


*여기서 잠깐!

라이트 리크 (light leak)/빛샘 현상: 빛이 카메라 안쪽으로 들어가 필름에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기는 현상. (그나저나 빛샘이라는 단어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레이션 (halation)이라는 빛 번짐 현상 기능도 있었다. 이건 필름 사진에서 빛이 강한 부분이 빨갛게 번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필름이라는 게 빛을 감지하는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빛이 너무 강하면 이 층 중에서 맨 아래층까지 뚫고 들어가서 반사된다고 한다. 반사된 후 다시 올라오면서 주변까지 빛이 번져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무튼 둘 다 빛에 대한 것이네. 사진에서 빛이 정말 중요한가 보다.


글 쓰는 사람: 어떻게 이렇게 설명을 잘하고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 내가 책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 듯한 느낌이 이런 건가. 하긴, 원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가장 많이 잘 알게 되니깐. 너무 재밌다!


사진 찍는 사람: 사실 후지 필름은 사진 결과물만 따져 놓고 봤을 때 다른 풀프레임 카메라들보다 불리하거든.

왜냐면 크롭 센서니까. 근데도 없어서 못 사는 카메라야. 제품 출시하잖아? 그럼 진짜 5분도 안 돼서 다 매진돼. 수요가 너무 많아도 얘네 공장 생산 라인이 그만큼의 물량을 다 커버 못해. 한 번 다 팔리면 끝이야. 다시 살려고 하다가 막 1년 걸리고 그래.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아. 그래서 후지 카메라는 나오면 무조건 사야 돼 (라면서 자기가 카메라 사야 한다는 깨알 이유를 이렇게 어필한다...) 이거 사서 쓰고 나중에 팔아도 더 비싸게 받는다고... 필테크야... 그 X 100 시리즈는 디자인이 완전 필름 카메라처럼 나오는데 출시가가 200만 원 대라도 한 달 후에 막 300만 원이 돼. 사람들이 되팔고 그런다고.


글 쓰는 사람: 오케이...




사실 이날 트리라이크스워터를 간 이유는 사진 찍는 사람이 '미키코 하라 (Mikiko Hara)의 사진집 Small Myths'를 사고 싶었기 때문. (참고로 사진집 서점 이라선에서는 판매하는데 트라라이크스워터에는 없었다. 참고로 가격이 8만 원대... 역시 사진집은 비싸다...). 이 일본 사진작가는 (1967년생, @mikiko.hara_) 뷰파인더로 보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이콘타라는 카메라로 (이 카메라에 대해서도 다음에 찾아봐야겠다) 사진을 주로 찍으며, 이 책에는 1996년부터 2021년까지의 사진 기록이 담겨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해!) 사진 찍는 사람이 좋아하는 느낌의 사진이라서, 이 사진집은 이라선 갔을 때 휘리릭 하고 넘겨봤는데 글 쓰는 사람인 내가 봐도 좋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보다는 사실 책 읽는 사람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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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사랑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 사람과, 글 쓰기를 사랑하지만 (독서를 더 사랑한다...)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 대신 글 쓰는 사람은 독서를 사랑해서 사진집이나 사진에 대한 책들을 평소에 자주 본다. 근데 카메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 시간이 쌓일수록 앎이 늘어나겠지. 너무 재밌다!



트리라이크스워터/TLW 영업시간: 금토일 13:00-19:00 (일주일에 3일 오픈)

*반려견 '레몬'이가 상주하고 있어요! (엄청 큰 강아지라서 조금 무서웠지만 강아지가 너무 무서운 손님들은 들어오기 전에 말해달라고 입구에 쓰여있답니다)



사진 찍는 사람: @ted_opic

글 쓰는 사람: @thesall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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