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하게 살고 싶었어요.
남편과 나는 어쩌다 보니 만난지 5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서로 연애의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각자 쓰라린 이별의 경험을 안고 두 번 다시 연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법도한데 서로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1년은 만나보고 난 다음에 결혼하겠노라 튕겨도 보았었지만 어느새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에 오르고 있었으니, 어지간히도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결혼 전부터도 워낙에 바빴던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도 연애할 수 있다는 말로 그렇게 나를 꼬시더니, 결혼 직후 몹시 바빠졌고, 나는 결혼 두 달 만에 임신이 되어 결혼 후 연애는 꿈도 못 꿨다. 그렇게 두 아이를 연달아 낳으며 육아를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결혼 10년이 훌쩍 지났다.
'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각종 배움으로 풀던 나는, 9시 육퇴를 고수했고 그 사이 퇴근한 남편은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나의 신념이, 우리를 각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결혼 10년,
'이렇게 권태기가 오는 건가?'
'나는 어떤 가정을 꿈꾸었지?'
'지금 나는 내가 꿈꾼 가정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지? 남편은?'
그런 생각들이 스치며 점점 우울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았다.
주변에 동갑내기 부부들이 많다 보니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무뚝뚝한 남편에게는 꿈도 못 꿀 달달함과 익살스러운 모습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나는 상대방을 바꾸려 하는 것에 대한 부질없음을 일치감치 터득했고 내려놓은 터라,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존중(좋게 말하면 존중, 어떤 면에서는 포기)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그렇게 나의 느낌으로는 서로가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는 여보랑은 평생 알콩달콩하게는 못살아보는 걸까요?"
"알콩달콩? 지금 알콩달콩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아, 우리 지금 알콩달콩하게 잘 살고 있는 거구나..... 땡큐!"
남편에게는 익살스러운 장난, 다정다감한 말을 주고받으며 살뜰히 챙겨주는 것, 그런 것이 알콩 달콩의 정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에 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다. 각자가 생각하는 알콩 달콩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만 알고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 것을!
여전히 남편은 무뚝뚝하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무뚝뚝할 것 같다. 차 안에서 신호대기 중에 뽀뽀를 하자고 하면, 누가 본다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출근 전, 퇴근 후, 안아달라고 하면 나무토막처럼 서서 뻣뻣하게 안아준다. 뽀뽀를 해달라고 하면 입술만 삐죽. 그런 것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남편은 늘 그상태 그대로인데, 나만 느끼는 그런 느낌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뚝뚝한 남편이, 나의 스킨십을 거절하지 않고 그렇게 받아주는 순간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증거라는 것을.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내 정신건강과 내 가정의 안녕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나는 아직 남편과 끈끈한 전우애가 아닌 끈적한 사랑을 하는 사이를 이어가고 싶다. 우리만의 알콩달콩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서로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서로의 밑바닥 역시,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묵묵히 기다려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