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감사한 날의 묵상...
어제 아들이 모처럼 보이스톡을 했다.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생일 축하해요 ~"
여러 분들이 카톡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아들의 축하가 더욱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아들아 내가 쓴 글 읽어봤어? 그렇게 써도 괜찮아?'
전에 같으면 쉽게 물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기다리고 싶었다.
어머니에게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연락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오늘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받으시고는
어제 갑자기 코피가 나서 병원에 있는 바람에 못 받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감사함을 전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시라고 했다.
먼 나라에 있어서 몸은 멀지만 마음은 늘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는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셨다.
최근 중요한 몇몇 일들 가운데 시간을 쪼개어 아들의 글을 읽던 중
내 마음을 깊이 찌르는 문장이 있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그랬어"
삶의 고통을 만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들의 예민한 감성은 그 강도를 더 한 것 같다.
사실 출생 자체만 본다면 모든 사람은 기적의 우승자들이다.
수억이나 되는 생명의 씨앗들을 다 물리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극심한 경쟁을 뚫고 최종 승리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자지러듯이 우는 신생아의 울음은 무슨 의미일까…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욥 3:11)
하나님이 자랑하셨던 욥조차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다.
하루 하루 사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고난에 묵묵히 침묵하셨고
그 침묵의 기간 동안 욥의 고난과 고통은 계속되었다.
욥을 더 고통스럽게 한 것은 그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에도
그의 아버지 역시 묵묵히 침묵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마침내 자신은 물론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
오직 아버지만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 날...
그날 비로소 반대편에 있던 아들의 마음은 아버지 편으로 돌이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침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것이 아닌 당신 자체를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
그것은 사랑의 침묵이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해 났나니"(욥 5:7)
모든 사람은 고난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을 느낀다.
차이점은 오직 하나,
그 고난과 고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이다.
허무한 자신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침묵도 이해하게 된다.
아들에게도 그날이 오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