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를 세우던 엘리트 관료들은 어디로 갔을까
엊그제 동경 시내에서는 길 가던 사람이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또, 경비 근무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 직장인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는데, 사인을 조사해 보니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변사 사고가 최근 12건이나 더 발생했음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의료 시설이 부족한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 경제 대국, 일본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변호사 이면서 TV 방송 패널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 오사카 지사 하시모토(橋本徹) 씨는 PCR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음성 판정으로 방송에 복귀했다. 그런데, 생방송 도중 진행자인 아즈미 신이치로(安住紳一郎) 아나운서가 송곳 질문을 했다. ‘음성이라 다행이네요’가 아니라, ‘그 어려운 PCR 검사를 어떻게 받았느냐, 전 지사라서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PCR 검사수가 유난히 적음을 지상파 방송의 젊은 아나운서가 꼬집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1월 첫 코로나 감염자가 나온 이후 약 3개월 만인 4월 21일 현재, 감염자 1만 2천여 명, 사망자 294 명으로 올림픽 연기가 결정된 후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감염자가 4만, 8만여 명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부흥 올림픽을 개최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아베 정부에 이제는 극우 인사 중심의 집권 자민당까지도 등을 돌리며 비판하고 있고, 6월 퇴진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자연재해가 유달리 많아 재해 관리의 대국이라 불리던 일본이 코로나에는 왜 이렇게 쩔쩔매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문제를 국경에서부터 아예 원천 차단한다는 미즈기와(水際) 정책의 실패, 노후화한 매뉴얼의 문제, 올림픽 개최를 위한 대응 지연 등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낙하산으로 내려와 주무부처인 노동후생성에 포진해 있으면서 정치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비전문가 각료들의 '손타쿠(忖度)'가 아닌가 한다. 손타쿠란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뜻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알아서 긴다’는 의미인데, 2017년 유행어 대상을 차지했던 단어다.
아베 수상은 2014년 2차 집권기에 행정부 국장 바로 아래 직책인 심의관 이상의 고급 각료 600여 명의 인사를 담당하는 내각인사국(内閣人事局)을 신설했다. 이른바 정치인이 행정 각료의 인사권을 쥐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고급 관료들이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 내각인사국이 이른바 손타쿠(忖度)를 만들어 낸 원흉으로 지적되고 있다.
손타쿠의 대표적 폐해 사례는 지난 2017년 모리모토 스캔들에 의한 긴키(近畿) 재무국 담당 직원의 자살 사건이다. 모리모토 스캔들은 아베 수상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는 극우 모리모토 학원이 국가 소유의 땅을 시가의 8분의 1인 헐값에 사들였고, 아베가 입김을 행사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재무성은 스캔들을 덮기 위해 관련 공문서에 아키에 관련 내용 등을 삭제토록 관할 재무국에 지시하는, 이른바 손타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서류를 고친 것으로 알려진 긴키 재무국 직원이 ‘상사로부터 문서를 고쳐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문이 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은 관련자 모두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하며 기소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시켰다. 아베 일병 구하기에 나선 검찰도 손타쿠를 한 것이다. 알아서 기었던 고급 관료들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부정행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책임을 홀로 덮어쓰기가 두려웠던 말단 직원만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코하마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올라 무분별한 정부의 대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집단 감염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고베대학 의대 감염증 전문의인 이와타(岩田健太郎)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 후, 유튜브 포스팅을 지우며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손타쿠 세력들의 집단주의가 발동하여 올바른 지적에 대해 집단 따돌림을 한 것이다. 언론의 손타쿠도 심각한 문제다. 아베 수상을 비판하는 인사들은 방송에서 제외되어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베 수상의 최측근이 사장, 경영위원 등 요직을 장악한 NHK를 비롯해 많은 언론들은 적극 손타쿠에 앞장서고 있다. 해외 입국자들을 공항에서 검사 대기시키면서 아베 수상의 친형이 만드는 회사 제품으로 골판지 침대를 만들어 글로벌 우사를 당한 것은 손타쿠의 극치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는 일본의 코로나 사태는 올림픽 개최에 함몰되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아베 정부와, 수상의 눈치만 살피느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손타쿠가 만들어 낸 '인재’ 임에 틀림이 없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글로벌 트렌드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5G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앞 당겨진 미래사회를 위한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비민주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들에 의해 나라의 백년대계를 세워 나가던 엘리트 관료들이 사라지며, 오히려 3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글로벌 경쟁에서 영영 뒤처지게 될 것이다.(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