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정도 지난 이야기이다.
40대 후반으로 넘어가던 해,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맙게도 회사에서는 나의 사직서를 바로 수리해주지 않았다. 만약 회사에서 즉각적으로 내 사직서를 받아주었다면 조금은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나란 존재가 회사에서는 없어도 되는 존재였다고 회사가 바로 승인한 것이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 생활을 못 버티고 자발적으로 퇴사를 감행하는 퇴사자 입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알량한 자존심에 불과했지만, 그 자존심마저 없었다면 나는 더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었다.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서 대단한 기업은 아니었고, 연매출 600억 정도 하는 조그만 패션 기업이었다.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패션 회사였고, 나는 대표 이사 바로 밑에서 총괄 임원으로 8년 여를 일한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글로벌 본사에서도 차기 대표 이사 후보로 꾸준히 거론될 만큼 인정을 받고 있었으니 회사에서 나가라고 강요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대표 이사는 나의 사직서를 세 번 반려했다. 그래도 나의 뜻이 완강하자 사직이 아닌 6개월 휴직을 제안했다. 지금 힘들어서 퇴사하는 것이면, 6개월 기회를 줄 테니 푹 쉬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6개월 후에 다시 복직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은 후회가 남지만.. 사실 지금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역시나 내 결정은 똑같을 것이다.
자녀는 아직 학생이고, 노후 준비가 잘 되어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회사에서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회사를 나온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이나 가족들은 '회사 생활 다 똑같다. 그래도 회사에 있을 때가 낫다. 어떻게든 버텨라.'라는 비슷한 조언을 나에게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컸다. 그래서 다 내려놓았다.
그 당시 내 상태가 어땠냐면.. 심각했다..
가족들에게도 얘기를 안 해서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자살은 죄악이라고 생각했고, 성격 또한, 부정적이거나 우울함과는 거리가 있는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즉, 자살은 꿈꿔본 적도 없거니와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직서를 제출하기 1년 전부터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거래처 접대로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신 날, 너무 우울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 바닥에 엎드려 한 시간을 울었다. 물론 가족들이 보는 앞이었다.
내 모든 삶과 인생이 의미 없이 느껴지고,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편안할 것 같았다.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 회사 생활을 끝내지 않는다면 나의 인생이 끝나겠구나.
그렇게 나는 8년 동안 열정을 다해 키워왔던 회사를 떠났다.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40대 후반에 회사를 퇴직한 가장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낼 생각이다.
언제나 그렇듯 퇴사는 끝이 아니고, 또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