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20화>
브룬트란트 보고서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권고의 저변에는 인구생태학자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으로 알려진 관리 실패를 피하자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공유지의 비극은 1960년대 급진적 환경사상을 떠받친 대표적인 메타포 가운데 하나로, 이후 환경정책 논의의 토대가 되어 왔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목초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목동들은 가능한 한 많은 소를 기르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긴다. 이런 방식은 수세기 동안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부족 간의 다툼, 밀렵,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와 가축의 수가 토지의 수용 능력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결산의 시간이 온다. 사회적 안정이라는 오래 기다려온 목표가 실현되는 순간, 공유지에 내재한 논리가 냉혹하게 비극을 낳는다.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목동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소떼에 소 한 마리를 더 늘린다면, 어떤 이익이 돌아올까?” 공동 목초지에 소를 늘려 방목할 경우, 그로부터 얻는 수익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귀속된다. 반면 과도한 방목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모든 목동이 공동으로 분담하므로,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은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합리적 계산은 소를 한 마리 더 늘리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선택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을 모든 목동이 동일하게 내린다는 점에 있다. 각자는 이익을 좇아 소를 늘리지만, 공동 목초지의 수용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도 소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면, 방목되는 소를 지탱할 공유지는 점차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하딘은 이 비유를 통해, 근시안적 이기주의와 무임승차적 자유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공유지의 자유를 신봉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때, 그 필연적 귀결은 파멸이다. 곧, 공유지의 자유란 결국 모두의 파멸을 의미한다. 지구라는 공유지 또한 다르지 않다. 지구는 인류 전체의 공유지이며, 합리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유한한 자원은 황폐화되고 그 결말은 파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유지의 비극이 정책적으로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요약하면, 인간이 합리적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공유지의 파괴는 필연적이며, 외부적 강제가 없는 한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역시 정부, 기업, 개인 등 경제 활동 주체들이 각자의 합리적 이익을 좇은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은 결코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 비극을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곧 자원 관리와 환경정책의 핵심적 과제로 자리 잡는다.
하딘은 그 해결책을 기술적 수단이 아니라 도덕성의 확장, 상호 합의된 강제와 같은 사회적·정치적 변화에서 찾았다. 이러한 관점은 중앙집권적 관리 체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강경한 담론으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합리적 이기심을 제어할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어 왔다. 나아가, 공유지의 비극을 회피하기 위한 상호 강제가 반드시 권위주의적 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전통적 자원 관리 방식이나 지역 공동체의 자기 조직화를 통한 거버넌스 제도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논의 역시 존재한다.
결국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테제는 공유지 이용의 자유가 필연적으로 파멸을 초래하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 합의된 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초기에는 그의 비관적 전망과 중앙 통제 혹은 사유화라는 해법이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인간의 자율적 조직화 능력과 다양한 제도적 해결책이 제시되면서 하딘의 비극론이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지구적 차원의 공유지 문제에 직면한 오늘날, 복잡성, 문화적 다양성, 변화의 가속화 속에서 해법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과학적 해법이 사회적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 또한 계속되고 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내용과 정책 권고는 단순한 정책 보고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구라는 공유지에서 전개되는 비극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장기적 비전이자, 실행 가능성을 고려해 정교하게 조정된 정책 설계도였다.
브런치북의 연재가 30화로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1』은 이번 회차로 마무리합니다. 제21화부터는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2』로 이어가며, 앞으로도 연재를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