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권고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9화>

by 완서담필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지편서정 제19화에서는 1987년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제시한 권고 가운데, 관리 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한 내용을 원문에 충실하게 요약해 봅니다.


인류가 마주한 환경과 개발의 문제는 이제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한때는 특정 지역의 오염원이나 단편적 피해로 여겨졌던 환경 문제가, 이제는 기후변화와 오존층 파괴, 생물다양성 손실처럼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얽혀 드는 양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더 이상 개별 국가의 노력이나 분절된 부처의 대응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환경과 개발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지속가능발전은 양자를 통합적으로 다룰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 및 정책 구조는 여전히 환경과 개발을 분리하여 다루고 있으며, 각 부처는 분절된 목표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 부처는 투자·생산·고용 확대를 우선시하여 환경 기반 유지에 소극적이었으며, 반대로 자원 보전 및 환경 보호를 담당하는 부처는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부처와 비교할 만한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은 환경 문제의 사전 예방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후적 대응에 머무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효과 중심적 접근(effects-oriented approach), 즉 오염 발생 이후의 정화 조치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문제의 원인(policy sources)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통합적 정책(Integrated Policy Approach)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접근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경제 및 산업 정책과 동등한 수준에서 다루고, 더 나아가 정부의 모든 부처, 국제기구, 민간 부문 기관의 핵심적 의무와 책임으로 제도화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외교, 통상, 원조 등 다른 정책 영역에도 동일한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역, 국제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제도적·법적 변화가 요구된다.


첫째, 국가적 차원에서는 내각 및 입법 위원회가 국가 경제 정책과 계획을 수립할 때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또한 농업, 에너지, 산업 등 주요 부처는 각자의 정책과 예산이 경제적·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활동을 장려하도록 명확한 책임과 책무를 부여받아야 한다. 이는 환경 문제를 환경 부처의 전담 영역으로 한정하는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정책 결정자가 환경적 고려를 필수적인 전제 조건으로 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각국은 환경 외교 정책을 마련하여, 자국의 정책이 타국 및 지구 공유재(global commons)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해야 한다.


둘째, 지역 및 초지역적 차원에서는 기존의 지역 협력 기구들이 지속가능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과 예산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환경 자원 문제―예컨대 국제 하천(국경을 넘어 흐르는 하천) 유역 관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협력 체제가 요구된다. 이는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공동의 접근 방식만이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국제적 차원에서는 유엔 체제를 포함한 모든 주요 국제기구 및 전문기구들이 지속가능발전을 그들의 핵심 임무와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 정부는 국제기구의 프로그램과 재정을 재조정하고, 기관 간 협력 및 조정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결의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전체 시스템의 리더십 중심으로서 지속가능발전의 진전을 평가·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특별 유엔 이사회’ 설치도 필요하다. 특히 유엔환경계획(UNEP)은 환경 데이터의 수집과 평가, 기준의 개발, 국제 협력의 조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구적 리스크 평가 체제의 정비 역시 핵심 과제이다. 리스크 평가에 관한 기술적 역량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나, 자연재해·인위적 재해·지구환경 위기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그 원인과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국제 전문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미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 과학기관, 산업단체, 국제기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리스크 평가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 주체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과학 공동체는 위험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정책 수립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으며, NGO는 시민들의 환경 의식을 제고하고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는 실천적 활동을 수행한다. 실제로 NGO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성이 높은 전략으로 평가된다. 산업계 역시 자원 관리, 환경 보호, 안전 기준의 수립, 경영 방침의 쇄신 등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 및 NGO를 지원하는 것은 산업계 고유의 중요한 기여 방식이기도 하다.


요컨대,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사후 대응을 넘어 사전 예방과 정책 통합이라는 철학 위에서 분절된 제도와 정책 결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환경적 고려가 경제적·사회적 고려와 동등한 위상을 확보할 때, 인류는 비로소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관리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환경적 제약은 더 이상 경제 성장을 억누르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환과 혁신의 기회로 이해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권고를 공유지의 비극 회피라는 관점에서 반추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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