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8화>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지편서정 제18화에서는 1987년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제시한 권고 가운데, 평화와 안전보장에 관한 정책 방향을 원문에 충실하게 요약해 봅니다.
평화와 안전, 발전과 환경은 서로 긴밀히 맞물려 있으며, 이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과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단지 군사적 요인뿐 아니라, 환경 파괴와 지속 불가능한 개발 역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첫째, 환경 스트레스는 분쟁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 환경 파괴가 직접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기존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심화시켜 갈등의 불씨가 된다. 토지 황폐화와 자원 고갈은 인구 이동과 난민 발생을 낳고, 국경을 넘어서는 긴장을 불러온다. 1970년대 에티오피아와 아이티의 분쟁은 토지 남용과 자원 고갈에서 비롯된 지속가능성의 악화가 근본 원인이었고, 그 결과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이루어진 불평등한 토지 분배 역시 차별과 빈곤을 심화시키며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협했다.
둘째, 분쟁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 군사적 충돌은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토지를 황폐화시키며, 대규모 난민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낳는다. 무엇보다 분쟁의 위협은 국가들로 하여금 막대한 자원을 군사비에 투입하게 하여, 환경 보전이나 빈곤 해소에 필요한 투자와 노력을 가로막는다. 세계 군사비 지출은 인류 절반을 차지하는 빈곤층의 총소득을 웃돌며, 그 가운데 60% 이상이 선진국의 몫이다. 개발도상국조차 수입 지출과 원조의 상당 부분을 무기 구입에 쓰고 있으며, 군수물자 또한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1980년대 중반 세계 군사비는 9,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중국·인도·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GDP 총합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소모된 자원은 열대림 보호, 사막화 방지, 식수 공급, 가족 계획 등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분야에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무기 의존 문화(arms culture)’가 확산될수록 사회는 비군사적 해법보다 군사적 수단에 기대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 끝에서 인류가 마주하게 될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핵전쟁이다. 핵폭발이 불러온 연기와 먼지가 태양을 가리고 지구를 냉각시키는 ‘핵겨울(nuclear winter)’은 생태계와 식량 생산을 무너뜨리며, 연쇄적 붕괴를 통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한다.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환경 파괴를 남기며, 우주의 군사화는 갈등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대량살상무기는 그 존재 자체로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전 지구적 재앙이다.
전통적인 안보 개념은 군사적 위협에 치우쳐 있어, 환경 악화와 자원 경쟁, 불평등과 같은 비군사적 위험을 외면해 왔다. 이로 인해 국가와 국제사회는 갈수록 심화되는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안보를 새롭게 정의하고 그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 전환이다.
첫째, 안보는 더 넓게 정의되어야 한다. 전쟁의 부재만을 뜻하는 좁은 개념을 넘어, 환경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 지속 불가능한 개발을 모두 안보의 위협으로 포함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둘째, 안보는 협력적 관리와 ‘공동 안보(common security)’의 관점에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핵 시대에 한 나라의 안보는 다른 나라의 희생을 통해 성취될 수 없으며, 상호의존성이 깊어진 현실에서는 협력과 절제가 불가피하다. 남극조약과 런던투기협약, 지역 해양 협력, 체르노빌 사고 이후 마련된 핵안전 협약은 국제 협력이 실질적 성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셋째, 군사비 절감과 자원의 전환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열대림 보존, 사막화 방지, 안전한 식수 공급, 가족 계획 지원은 모두 군사비의 극히 일부만 전용해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실제로 중국, 아르헨티나, 페루는 짧은 기간 안에 군사비를 민간 지출로 돌려 성과를 거둔 사례를 보여준다.
넷째, 대량살상무기의 통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핵보유국들은 비확산조약(NPT)의 약속에 따라 핵 감축과 폐기를 실행해야 하며, 화학·생물무기 역시 생산과 비축 자체를 금지하는 강력한 협약이 필요하다. 나아가 우주 공간에서의 군비 경쟁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 역시 시급하다.
다섯째, 환경·분쟁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토양 침식, 인구 이동, 공유 자원 남용과 같은 지표가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이를 감지하고, 분쟁의 위험을 미리 경고할 수 있는 국제적 체제가 필요하다.
여섯째, 제도적·법적 변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도 공허하다. 환경 정보 접근권, 의사결정 참여권, 피해 구제권은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국제법적 기반도 강화되어야 한다. 나아가 유엔은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보편적 선언과 협약 제정을 주도해야 한다.
요컨대, 평화와 안전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떠받치는 토대이면서, 동시에 그 부재는 지속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위협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안보 개념을 확장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해, 평화와 환경, 그리고 발전이 서로를 지탱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인류 공동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다음 글에서는 브룬트란트 보고서 권고 사항의 마지막 주제이기도 한 관리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해 요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