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21화>
브런치북 연재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는 제1권의 스무 회차를 마치고 이제 제2권으로 이어집니다. 제1권이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추적하였다면, 제2권에서는 그 개념이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떤 굴절과 충돌을 겪었으며, 기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권에서 다루게 될 주요 논의 대상은 환경정책 통합, 기후변화 대응, 민주주의의 진화, 그리고 현상 유지와 변화 사이의 긴장 관계입니다. 이제 ‘지속 가능한 발전’은 더 이상 이상향의 수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정치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본 연재는 그 혼란과 혼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보다 이론적인 시각을 통해 현실을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제1권에서는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과 그 정책적 함의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생각은 현실 정치 속에 스며들어 어떤 실천으로 나타났으며, 또 어떻게 정치를 변화시켜 왔는가. 제2권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하나의 담론(discourse)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담론이란 말과 글로 드러나는 물질적 실체를 뜻하며, 우리는 특정한 담론을 수용하고 의거함으로써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외부 세계를 이해한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담론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은 수많은 환경 담론 가운데 어디에 위치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 담론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기존 질서를 흔드는 담론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담론이 다양한 환경 담론 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짚어야 한다. 정치학자 존 드라이젝(John S. Dryzek)은 환경 담론을 두 축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산업주의와의 거리를 개량적으로 두는가, 아니면 급진적으로 두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담론의 비전이 진부한 사고에 뿌리를 두는가, 아니면 독창적 사고에 뿌리를 두는가이다. 이 두 축이 교차할 때, 환경 담론은 아래 도표와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문제 해결’ 담론은 환경 문제를 기존의 통상적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환경 문제란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적으로 대응하면 되는 사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규제적 수단, 경제적 수단, 시민 참여적 수단 등 의견 차이가 존재하지만, 문제 해결 담론은 결국 다른 정책 영역에서 쓰이는 통상적 방법을 환경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이 담론에서는 정치·경제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나 대안적 사회상을 제시하는 논의가 핵심 주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문제 해결 담론은 산업주의와의 관계에서는 개량주의적이고, 환경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종래의 수법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진부하다.
둘째, ‘생존주의’ 담론은 ‘지구 수용 능력의 한계’, ‘문명의 파국’, ‘인류의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특징지어진다. 이 담론에 따르면 지구의 자원 공급력과 폐기물 흡수 능력에는 물리적·생물학적 한계가 있으며, 경제 성장의 규모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무한한 성장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것은 자원의 고갈과 환경 악화, 나아가 문명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생존주의 담론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 인구를 줄이고, 자원과 에너지의 처리량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정상상태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사회의 파국을 예고하고 그로부터의 급격한 전환을 호소한다는 점에서 생존주의는 급진적 담론에 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집권, 관료제, 기술적 해결책, 인간 중심주의와 같은 구태의연한 제도와 사고방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진부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셋째, ‘지속가능성’ 담론은 환경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대립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점에서, 산업혁명 이래의 산업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급진적 단절이 아니라 환경 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개량해 가는 데 무게가 실린다. 또 이 담론은 환경 문제를 애초에 발생시키지 않는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긍정한다는 의미에서 독창적 요소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지속 가능한 사회가 산업혁명 이후의 공업화·근대화 흐름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사회의 폐기가 아니라 그 생태학적 재구성이다. 나아가 지속가능성 담론은 산업사회의 생태학적 개조가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생태 기술 혁신은 오염 처리 비용 절감뿐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속가능성 담론은 환경과 경제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곧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넷째, ‘급진 생태주의’ 담론은 산업주의와의 거리 두기와 독창적 발상이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급진적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담론은 자원을 보전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인간의 복지 때문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태계 자체가 보호받아야 할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진 생태주의는 ‘인간을 위해 환경을 보호한다’는 전제 속에 깔린 인간중심주의(인간을 존중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다른 생명보다 인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해체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는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생태계 안에서 그들과 동등한 동료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가치관이 인간중심주의에서 생태계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사고는 네 가지 담론 가운데 지속가능성 담론에 속한다. 위의 도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담론은 산업주의와의 관계에서는 온건한 성격을 띠지만,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는 독창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지속 가능한 발전’은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급진적 환경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현 체제를 인정한 위에 부분적 개선을 더해 가는 수준에 머물러 결국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 반대로 환경정책이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에서는, 경제에 환경적 목표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 경쟁 원리를 위협하는 급진적 사상으로 비칠 수 있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발전’은 보는 관점에 따라 급진적으로도, 개량적으로도 해석되며,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개념이자 담론의 숙명을 지니게 된다.
환경언설의 비교에 관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평가하자면, 현재 가장 널리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지속가능성 담론이다. 드라이젝에 따르면, 그 이유는 지속가능성 담론이 제시하는 긍정적 서사에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바로 이 지속가능성 담론에 속하며, 그 대표적 텍스트가 지편서정 제1권에서 다룬 『브룬트란트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환경과 경제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양립 가능한 관계임을 강조하며, 환경적 관심을 경제에 내부화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된다고 서술한다. 즉, 지속가능성 담론은 우리가 타고 있는 산업주의라는 배를 굳이 버리지 않더라도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항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낡은 배일지라도 생태학적으로 개조해 쓴다면 지금의 산업주의라는 배로도 항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온건한 환경단체는 물론, 한때 환경운동과 대립하던 정부와 기업들까지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속가능성 담론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의미상의 모호함은 늘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지곤 하며, 이는 지속가능성 담론이 짊어진 숙명이기도 하다.
지편서정 제2권 연재는 목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주 2회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음 글에서는 위와 같은 담론의 분류를 염두에 두고, 지속가능성 담론이 지닌 급진적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그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환경정책 통합’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