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책통합: 지속가능발전의 본질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22화>

by 완서담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주요 정책 목표 속에 그에 관한 목표를 통합해야 한다.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이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목표는 경제정책과 계획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산업 부문과 외교정책을 관할하는 행정부·입법부의 각종 위원회 위임 사안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경제·산업 부문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은 그 정책, 계획, 예산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생태학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도록 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정책 통합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환경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환경문제가 세분화된 전문 행정조직의 사후적이고 기술적인 대책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뒷수습식 대책만으로는 문제가 형태와 장소를 바꿔가며 되풀이될 뿐이었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을 거치면서 다른 정책 목표 속에 환경적 고려를 통합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가 강조한 정책 통합의 핵심은 환경정책통합(environmental policy integration, EPI)이다. 이는 환경적 고려를 환경정책 외의 다른 정책 영역 속에 포함시키고, 정책 입안의 모든 단계에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테면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즉,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경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기후변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기후변화 방지를 에너지·경제정책의 목표에 통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 이래 유럽연합(EU)이 추진해 온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EPI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윌리엄 M. 래퍼티(William M. Lafferty)와 에이빈 호브덴(Eivind Hovden)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EPI에는 수직적 EPI와 수평적 EPI가 있다. 전자는 경제산업성이나 국토교통성과 같은 개별 정부 부처가 자체 정책 목표 속에 환경정책의 목표를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후자는 정부 전체 부처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중앙정부나 그에 준하는 권위 있는 기구가 EPI를 설계하고 각 부처에 책임을 분담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연재에서 곧 다룰 주제이기도 하지만, 2002년 독일 연방정부가 수립한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은 후자인 수평적 EPI에 가까운 사례다. 이러한 EPI는 사후적 대응이 아니라 예방적으로 환경문제를 다루는 수단이며, 이런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EPI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EPI가 시행되면 부처 간 정책 협의가 활성화되고, 지속 가능한 발전 관련 정책의 일관성도 강화된다. 그 결과 정책 수행은 한층 원활해지고 효율적인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업계는 EPI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특히 정부나 노동조합의 시장 개입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정치문화가 강한 나라일수록 EPI 도입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미국이 1997년 채택된 온실가스 감축 의무 협정인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서 탈퇴한 것도, 기후변화 방지라는 목표를 경제정책에 통합하려는 시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거부감이 산업계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계의 우려에는 이념적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이를 불식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1990년대에 들어 독일 정부는 기후변화 정책과 에너지정책을 통합하면 경제가 오히려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관련 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고용 창출 등 경제적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유럽의 선진 공업국에서 ‘생태학적 근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라 불리며, 환경정책과 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생태학적 근대화는 대체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선진 공업국 버전으로 간주되며,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과 함께 ‘지속가능성 담론’의 한 범주로 분류된다(자세한 내용은 지편서정 제21화 참조). 또한 미국처럼 정부 개입을 꺼리는 정치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도, 정부가 환경산업 성장을 유도해 경제 전반을 부양하려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러한 EPI는 더 이상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니며, 점진적이긴 하지만 EU에서는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1997년 EU의 암스테르담 조약에는 “환경 보호는 다른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방침이 명시되었고, 이 원칙은 1998년 카디프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EPI는 EU의 우선적 정책 목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유럽에서는 에너지, 교통, 농업, 지역개발 등 여러 정책에 환경정책 목표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독일은 EPI를 중점 과제로 하는 국가 전략을 수립했고, 벨기에는 모든 부처에 지속 가능한 발전 담당 부서를 설치했다. 환경부 기능과 다른 부처 기능을 통합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의 ‘환경·토지이용부’, 영국의 ‘환경·식량·지역부’, 폴란드의 ‘환경보호·천연자원·산림부’, 스웨덴의 ‘지속가능발전부’ 등을 들 수 있다. 나아가 EU 차원에서는 농업, 교통,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조금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으며, 에너지 부문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상한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남은 배출분을 거래하는 EU식 배출권 거래제도(cap-and-trade)도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PI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EU처럼 선도적인 경우조차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치적 연합체인 EU는 회원국의 주요 정책에 직접 개입할 충분한 권한과 집행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EU 의회는 EPI에 부분적으로만 관여하고, 집행기구인 EU 위원회 역시 정책 심의 수준의 역할에 머물렀다. 또한 EU 내부에는 여전히 분절적이고 칸막이식인 행정 구조가 남아 있어 추진에 장애가 되고 있다. 회원국 차원에서도 부처 간 이해관계 갈등과 칸막이 행정이 EPI를 저해한다. 비록 EPI가 우선적 정치 과제로 인식되더라도, 권한이 강한 부처가 이를 거부하거나 내용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EPI가 결실을 맺으려면 이러한 장애 요인들이 해소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EPI에서 말하는 경제적 목표와 환경적 목표의 통합이란 경제의 성격 자체를 환경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이 지향하는 환경과 경제의 통합은 단순한 절충적 조화론과 다르다. 절충적 조화론은 “경제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환경을 고려한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말하는 환경과 경제의 통합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두 개념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과 경제의 통합과 관련해 가장 급진적인 패러다임은 생태학적 경제학(ecological economic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허먼 E. 데일리(Herman E. Daly)는 “경제성장은 곧 불경제”라고 단언했다. 지구 생태계의 부양 능력을 무시한 경제성장은 자원 고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전쟁 등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낳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적합한 경제는 ‘정상상태 경제(steady-state economy)’다. 정상상태 경제에서는 자원과 에너지 소비량이 지구의 부양 능력을 초과하지 않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되며, 그 안에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혁신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의 말대로라면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않지만, 질적으로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경제”가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경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환경산업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생태학적 근대화나 그린 뉴딜은 생태적 색채가 옅은 개량주의적 접근에 불과하다.


분명 환경정책통합은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의 본질적 요소다. 그러나 의미가 증식하면서 생겨나는 다의성과 딜레마는 이 지점에서도 되풀이된다. 이 연재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여러 갈래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해당 사회의 정치적 의지와 합의 형성 능력에 달려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 속에 스며 있는 또 하나의 정책통합, 즉 환경적 목표와 사회적 정의의 결합에 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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