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23화>
환경정책통합이라는 요소에 더해,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은 환경적 목표의 중요성을 공평성(equity)의 관점에서도 설명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본질적으로 윤리적 과제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공평성의 요소 때문이다. 이 담론에서 환경적 목표와 공평성은 적어도 다섯 가지 차원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첫째, 브룬트란트 보고서가 밝히듯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기본적 필요 충족을 훼손하지 않는 발전이다. 현세대는 스스로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자원을 사용하고 개발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원이 낭비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미래 세대의 기본적 필요는 충족될 수 없다. 이는 불공평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기본적 필요에 있어서 세대 간 공평성을 해치지 않는 발전이어야 한다.
둘째, 환경적 목표와 공평성은 지리적 차원에서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상류에서 오염된 물로 하류 주민이 피해를 입는 것은 지리적 관점에서 불공평하다. 공장에서 배출된 유해물질이 지역 주민의 건강을 해치거나, 발전소에서 나온 온배수가 강과 바다의 생태계를 교란해 어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 간, 대륙 간에도 발생한다. 화석연료 소비는 지역적 활동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 그 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이러한 불공평을 낳지 않는 발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하고,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위험의 분배와 정치적 참여에서의 공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약자에게 더 크게 다가오거나 구조적으로 더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동일한 지역에서 오염이 반복되는 까닭은 주민이 가난하여 오염기업에 항의할 정치적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림 파괴가 멈추지 않는 것도 현지 정부와 주민이 빈곤 때문에 파괴를 용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불공평을 시정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위험의 분배와 그 결정 과정에서의 불공평을 바로잡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환경적 지속가능성 개념은 자원 접근과 소비의 공평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인류 공동의 재산인 천연자원이나 유전자 자원의 이용에서 기술력을 가진 선진 공업국은 언제나 수혜자로서 이익을 누려왔다. 반대로 자원 고갈과 환경 악화라는 부정적 영향은 선진 공업국보다 개발도상국이 더 크게 감당해 왔다. 예컨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는 산업혁명 이래 선진 공업국이 대량 소비해 온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것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이다. 개발도상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 과정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불공평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개발도상국을 지속 가능한 발전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공평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다섯째,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공평성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 이외 존재 사이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생태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동등한 구성원일 뿐이며, 따라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조화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도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인간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 왔다. 이러한 태도는 불공평한 사고방식이다. 지속가능성 담론에서 이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배제된 것도 아니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 역시 주로 세대 간·세대 내 공평성을 강조했으나, 종 보존을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심미적·윤리적·문화적·과학적 근거에서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에서 보듯, 인간 이외 존재와의 공평성에 대한 함의가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처럼 모호하게 남겨진 부분은 지속가능성 담론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한편, 현실 정치에서 공평성 문제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표적 분야는 선진 공업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이다. 개발도상국의 시각에서 보면, 특히 지구환경 문제는 산업혁명 이래 선진 공업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환경보호를 이유로 개발도상국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발전 기회를 제한하는 불공평한 조치다. 이러한 불만은 이미 1972년 스톡홀름 회의에서 표면화되었으며, 소위 남북문제로 알려져 있다.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이러한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1992년 체결된 기후변화협약에서도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고려해 “공동이나 차별적 책임”이라는 원칙이 채택되었다. 이 역시 선진 공업국의 책임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라는 공평성의 관점이 중시된 결과였다.
다른 한편, 공평성의 감각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없는 정책을 도입할 때 합의 형성을 용이하게 한다. 예컨대 1990년대 후반 독일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의 일환으로 휘발유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를 도입하려 했으나, 세금 부담 증가를 우려한 산업계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독일 정부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산업계와 협상에 나섰다. 첫째는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의 세금 부담을 제도 시행 초기에는 가볍게 한다는 조건이었다. 둘째는 세수의 10%를 기후변화 대책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종업원의 연금 보험 재원 등으로 기업에 환원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는 기업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윈-윈’ 전략에 근거한 제안이었다. 산업계는 이를 수용했다. 탄소세 도입 후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은 한 달에 약 330엔 정도 올랐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산업계가 더 부담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남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평성은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윤리적이자 현실적인 과제이다. 바로 이 때문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려면 공평성의 요소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다음 글에서는 분배의 정의라는 고전적인 과제가 왜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