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랑제 통신 No.1 프롤로그
나는 일본에 산다. 꽤 오래 살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일본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이제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일도 예전만큼 단순하지 않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익숙하다고 믿었던 거리와 건물, 심지어 사람들의 어투과 복색까지도 어느새 달라져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깨닫는다. 나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완전히 안쪽에 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재일교포는 아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으로 건너온 현대판 도래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이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알던 한국도 아니고, 한국에 있을 때 상상하던 일본도 아닌, 그런 어설프고 낮선 층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한편에는 익숙함이 서서히 풀려 가는 사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낯섦이 천천히 걷히는 사회가 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어느 사회에서도 끝내 완전한 익숙함에 이르지는 못할 것임을 안다.
점점 익숙해지는 동시에 점점 어색해져 가는 일상과 언어 너머로, 두 사회는 모두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그 사이에서 유목민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 물론 이것은 지리적인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 감각과 시선이 어느 한곳에 고정될 수 없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그 유동성은 무엇으로부터 밀려난 결과도, 타력에 의해 결정된 경로도 아니다. 완전히 귀속되는 대신, 끝내 남겨 두어진 거리와 그로부터 생겨난 감각을 감내해 온 선택들의 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에트랑제(étranger)다.
에트랑제란 본래 무엇무엇에 대한 이방인이라는 뜻의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말은 점차 하나의 정체성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상태가 아니라, 어디에 완전히 귀속되는 것을 유예하거나, 때로는 계속해서 거부하는 상태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일본을 살아가는 나로 존재하고, 한국에서는 일본에 사는 한국 출신의 현지인으로 인식되는 나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나의 자리를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일본은 일본대로, 에트랑제인 내가 아무리 녹아들고자 해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차별이라기보다 구조와 기억의 문제에 가깝다. 한편 한국은 한국대로 나를 다시 에트랑제로 만든다. 노스탈지아로 남아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시간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귀환을 허락하는 장소가 아니다. 이 두 경험이 겹치면서, 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정형이 얼마나 강하게 구성된 이데아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데아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태도야말로, 어쩌면 내가 선택해 온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트랑제. 감히 말하자면, 나는 이 이방인으로서의 자리가 어느 사회에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외부자만의 체념이나 특권의 자리라기 보다는, 내부에 있는 사람 또한 때로는 의식적으로 획득해야 할 거리감 같은 것이 아닐까. 익숙함이 사고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에트랑제라는 시선을 통해 현현되는, 스스로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들을 마주할 필요가 생긴다.
에트랑제 통신이라는 이름의 이 연재는, 바로 그 에트랑제의 자리를 한 개인의 기록이라는 형식으로 더듬어 보려는 시도다. 이 연재는 일관된 주제를 따라 정연하게 엮이기 어려울 것이다. 연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해진 주기나 형식을 약속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쓰이게 될 글들은 어쩌면 두서없는 기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각각의 글들이 에트랑제라는 위치에서 떠낸 시공의 단면이라는 점이다.
이 연재에 실리는 글들은 이방인의 시점에서 전해지는 일본에 관한 소식이기도 하고, 한국에 관한 소식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재는 장소와 국경, 소속으로 정의되는 정체성이라는 구분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고자 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완전히 속하지 않은 채 살아가며, 부여된 정체성의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질문들을 기록하는 일. 「에트랑제 통신」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