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 네 명의 부부가 중국 충칭으로 자유여행을 왔다.
이 도시는 나에게는 업무와 출장 등으로 와본 친숙한 도시다.
양쯔강과 가릉강이 만나는 이곳에, 안개와 바람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서부 중심 도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살아가는 이 거대한 충칭은
여전이나 지금도 첫인상부터 압도적이다.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듯하고,
길을 걸으면 언제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입체적인 고가도로들.
모노레일과 전철은 도시의 빌딩을 속을 뚫고 지나가고, 엘리베이터는 지하 6층에서 지상 50층까지를 오간다.
우리는 6일간의 자유여행을 통해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시절의 충칭은 피난의 수도였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도시였다.
이 도시는 중국 근대화 시기에 국, 공 전쟁 및 일본 침략 때는 중국의 수도였다
엘링공원의 정자에 올라 충칭 시내를 내려다보던 한눈에 중칭의 지난날이 보인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충칭은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수백 번의 공습과 폭격 속에서도 수많은 피난민과 정부기관, 예술가와 작가들이 이곳에서 버텼고 대한민국 임서 정부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마지막으로 항거한 도시. 우리나라의 김구 선생과 중국의 백린, 이중석, 장개석, 모두 이곳 도시의 땅을 밟았다.
그들은 삼협박물관에서 옛 공습 대피소와 전시 자료를 통해 그 시절의 고통과 저항을 눈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치시커우 옛 마을 전통거리를 구경하고 걸으며,
예스러운 돌길과 백 년 찻집, 전통 과자와 붓글씨 가게를 지나며 충칭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충칭은 입체도시로 문화와 에너지의 융합체로 거듭나고 있다.
충칭은 오늘날 인구 약 3,400만 명, 면적은 서울의 30배 이상,
중국 최대의 직할시이자 국가급 경제 중심지 중 첫 번째 도시다.
산과 강에 둘러싸인 입체도시는 케이블카, 모노레일, 천장 지하철, 급경사 도로 등 발 마사지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충칭 훠궈의 원조 도시인 이곳은 신기하면서도 활기찬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내 강가 급경사지에 위치한 옛 충칭 사람들믜 거주지였던 홍야동은
계단식 전통 건물이 절벽에 매달린 듯 들어서 있고,
수천 개의 홍등이 켜진 야경은 마치 옛 중국의 거리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줬다.
길을 건너면 곧장 현대적인 마천루가 펼쳐지고,
충칭시 번화가의 중심인 해방비 거리 광장에서는 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와 글로벌 커피숍, 젊은 예술가들의 길거리 공연이 어우러졌다.
중경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산과 물, 과거와 현재, 전통과 기술이 끊임없이 뒤섞이며 이 도시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의 충칭은 창조와 도약의 도시로 이어지고 있다.
충칭은 오늘도 계속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도시 외곽에는 과학기술 혁신단지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양쯔강을 따라 형성된 리창 신지구는 미래형 산업도시로 뻗어가는 중이다.
여행 일정으로 TESTBED2 예술지구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복합문화공간, 독립서점과 갤러리를 돌아봤다.
낡은 공장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중경의 창조적 미래를 상징하는 곳이다.
또한 밤에는 우리 일행은 남산(南山)의 일과수 전망대에 올라 수천 개의 빌딩 조명빛이 강변을 따라 흐르고, 안갯속에서 반짝이는 도시는 중국의 3대 야경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우리는 감탄을 했다 “산과 강, 옛것과 새것이 같이 공존하는 도시.
이 도시는 여전히 변하고 있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충칭에서 6일간, 단순한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 속을 함께 걷는다. 누군가의 전쟁, 누군가의 청춘, 누군가의 하루를 고스란히 담은 이 도시.
며칠간 관광을 하면서 지인 부부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관광지를 보는 게 아니라, 도시가 숨을 쉬는 심장소리를 들었어.
이 도시는 나날이 새로울 것 같아.”
그렇다. 이곳 충칭은, 시간을 걷는 도시다.
과거를 품고 오늘을 살며,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
이곳에서 며칠 더 남은 일정에서 충칭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도시의 이곳저곳을 거닐고 만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