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처럼 스쳐간 세월과 따뜻한 추억

by 김성훈


어제저녁, 큰아들과 며느리, 손자,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들 집 근처 고깃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가까이 사는 아들 내외와는 가끔씩 같이 저녁을 먹곤 하는데, 특히 아내는 바깥에서의 식사를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우리 부부 둘만의 저녁 준비도 귀찮아져 가능한 한 외식을 하거나 아들들의 일정을 맞춰 번갈아 가며 식사를 함께 한다.


저녁을 마친 후, 아들이 추천한 세곡동의 한옥집 카페에 갔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소나무와 대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연꽃이 떠 있는 작은 연못과 은은한 전구색 조명이 어우러진 한옥집 풍경은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의 호롱불을 떠올리게 했다. 대청마루와 사랑방을 개조한 차 테이블과 콩기름으로 윤기가 나는 방바닥은 옛집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흘러간 시간을 이야기하며 추억의 이야기들을 해줬지만,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아내까지도 그 감정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옥은 나에게는 추억이지만, 아파트에서 자라난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낯선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한옥집 카페는 서울 도심 속에서 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듯한 고즈넉함을 풍겼다. 앞으로 지인들과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얘기를 하던 중, 아들이 결혼 10주년이 되었다는 말을 하길래 내심 놀랐다.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니. 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아들은 이번에 우리가 살다 세 놓은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다. 손자의 교육을 위해 아들에게 전세 계약을 하며, 가족들 간의 세금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순간, 나의 젊은 시절 결혼 후 10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세대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직장을 따라 전국을 이사 다니며 살았다. 결혼을 하고 고향에서 월세 방 한 칸부터 시작한 살림살이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이사를 거듭한 횟수만 십 년 동안에 열 번이 넘었다. 80년대에는 주로 주택에서 살다가 15평 임대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을 때, 그 작은 공간이 궁전처럼 느껴졌다. 이후 서울에서 33평 아파트를 마련하여 이사할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고, 그리고 지금의 강남의 45평 아파트에서는 또 다른 성취감을 느꼈다. 이후 지금까지의 이사 횟수를 세어보니 무려 17번. 아내도 그 숫자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10년 만에 처음 이사를 하는 아들에게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은 고속철도와 편리한 교통망 덕분에 지방 출퇴근도 가능해졌고, 자녀 교육과 삶의 질을 위해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우리가 젊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인생은 마라톤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력질주하는 100미터 달리기처럼 느껴진다. 어린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부모님의 하루가 다르게 연로하신 모습을 보면 시간의 무게와 속도를 실감한다.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좀 천천히 크면 안 되겠니?”라고 농담처럼 말할 때면, 삶의 속도가 어찌 이리 빠른지 탄식이 나온다.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라가 가난한 시절,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시던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후회가 남는다. “부모님 마음을 알게 될 때쯤이면 부모님은 이미 떠나 계신다”는 얘기는 이제 와서야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첫 세대라고 한다. 경제적 상황과 삶의 방식이 달라졌기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다.



어젯밤, 한옥 카페의 사랑방에서 아들과 며느리, 손자, 아내와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나눈 대화는 너무 좋았다. 오래된 집의 정취 속에서 흘러간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이 평온하기를 바랐다.


인생은 심은 만큼 거두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빨리 흘러가지만, 남은 것은 가족들과의 추억들이다. 오늘도 그리운 이들과의 만남이 내일의 따뜻한 추억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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