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는 용기, 부모 사랑의 또 다른 얼굴

by 김성훈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살고 있는 여동생네 부부가 다음 달 한국으로 귀국한다.

5년을 예정한 한국살이를 하기 위해서다. 단순한 귀국이 아니라, 평생을 미국에서 살았고 이제 은퇴할 시기에 접어든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정리해 보려는 긴 호흡의 선택이다.


매제는 스물두 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석·박사 학위를 마쳤고, 이후 지금까지 전기 분야 엔지니어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미국 땅에서 청춘을 보내고,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며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묵묵히 완주해 왔다. 이제 나이도 예순 후반이다.

은퇴를 앞두고 고국에서의 삶을 오래전부터 꿈꾸고 준비해 왔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고, 남은 인생의 후반부는 익숙한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한국에는 이미 10년 전 마련해 둔 방배동에 아파트가 있다.


매제는 1980년대 중반, 유학 중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여동생과 결혼했다. 이후 미국에서 세 자녀를 낳아 키웠다. 큰딸은 약사, 둘째 딸은 치과의사, 아들은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었다.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았고, 교포 2세로서 미국 사회의 주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면 부족할 것 없는 성공적인 이민 가정이다. 그러나 매제 가족들의 마음 한편에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아직도 세 자녀 모두 결혼을 하지 못했다.

큰딸은 서른여덟, 아들은 서른일곱, 둘째 딸은 서른둘이다. 결혼을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매제의 완고한 결혼관 때문이다.

매제는 자녀들의 결혼만큼은 반드시 한국 사람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굽히지 않았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결혼은 한국인과 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는 자녀들을 키우며 집안에서는 늘 한국말만 쓰게 했다. 한 번은 내가 미국에 전화를 했을 때 큰 조카가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하고 받았다. 미국인데 왜 영어로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조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삼촌, 우리 집에서 영어 쓰면 밥 안 줘요.”

그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매제의 교육관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가족 간 대화도, 정서도 철저히 한국식이었다. 덕분에 조카들은 한국말과 영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한다. 많은 교포 2세, 3세들이 한국말에 서툰 것과 비교하면 큰 장점이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경쟁력이 되었다.



교육 방식 또한 철저히 한국식이었다. 조카들 세 명은 미국의 학력고사인 SAT를 준비하기 위해 여름방학마다 서울 대치동으로 와 학원 수업을 들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국가 대출이나 장학금,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매제는 달랐다.

세 자녀 모두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끝까지 책임졌다. 자녀를 공부시키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국의 정서를 심어주고 교육을 시킨 부모의 헌신은 분명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헌신이 자녀들의 인생 중요한 선택까지 부모의 틀 안에 묶어두고 있다는 데 있다.

조카들은 미국 시민이다. 미국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사고방식도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형성되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었지만,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대화의 문 자체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조카들은 각자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미국에 들를 때마다 외삼촌인 나와 집사람은 조카들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고 평범한 만남이다. 그러나 매제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다. 생각이 워낙 완고하다 보니, 내가 조심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난감한 상황이다.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자식을 끝까지 품에 안고 있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때가 되면 놓아주는 것이 사랑일까.

문득 동물 이야기가 떠오른다. 곰은 새끼를 사람처럼 어미젖을 먹여 키우다가 두 살이 되면 새끼 곰이 좋아하는 딸기밭으로 데려간다고 한다.

새끼 곰이 신나게 딸기를 따먹으며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어미 곰은 딸기밭을 빠져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간다. 배를 채운 새끼는 어미를 찾지만, 어미는 없다. 울며불며 헤매다가 지쳐 딸기밭고랑에서 잠을 자고, 며칠을 어미를 찾아도 소용이 없다.

결국 새끼 곰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부모가 안아주는 따뜻함도 사랑이지만, 냉정하게 놓아버리는 마음 또한 사랑이다. 어미 곰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러나 때가 되면 자식과의 정까지도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의 철학이 그 안에 있다.

그런데 요즘 사회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따뜻한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키우려 한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옛말이 되었고,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져야 자식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한다. 헬리콥터 부모, 고액 사교육, 치맛바람 속에서 자식들은 부모의 만족과 성취를 증명하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정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제는 핵가족화가 일상이 되었고, 명절이면 부모와 자식의 상봉이 행사처럼 치러진다.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익숙해져서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간다.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말도 있다. 재산을 안 주면 맞아 죽고, 조금 주면 졸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 큰아들은 큰 도둑이고, 작은아들은 작은 도둑이라는 웃지 못할 말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고 하지만, 돈 앞에서는 핏줄도 무너진다는 말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돈이 피보다 진한 시대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안 놀며 모아 왔다. 그렇게 모은 재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묻어두었고, 재산에 대한 인식은 곧 부동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생각도 바꿔야 할 시기다. 내 집에 대한 애착도 내려놓고, 주택연금도 살펴볼 때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족에게 소외되지 않으려면 금융 자산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내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효도 계약서라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 간의 유대는 약해지고, 개인주의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가정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나이 중심의 수직 질서에서 개인의 행복이 우선인 수평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가족은 있으나 가정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노부모 부양을 가족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노년 세대를 ‘부모에게 효도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부모는 가족 위에 군림하며 부양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녀의 삶과 부모의 삶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를 이해하려 애써야 하고, 자녀 세대 역시 부모의 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효의 개념도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리해야 할 때다.



매제는 분명 자식들에게 훌륭한 아버지였다.

미국에서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잃지 않게 했고, 조국의 정체성을 심어주었으며, 셋 모두 사회에 당당히 내보냈다. 그 헌신과 사랑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의 언어와 문화가 융합되는 AI 시대에, 자녀들의 결혼만큼은 반드시 한국 사람과 해야 한다는 고집은 자녀들의 삶과 너무 멀어져 있다. 부모의 바람이 자녀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고통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는 결혼의 목적과 배우자 선택 기준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모 세대는 결혼을 경제력과 안정성, 가족관계를 포함한 현실적 선택으로 보고 가정의 유지를 중시한다.

반면 자녀 세대는 결혼을 개인의 행복과 감정적 교감, 가치관의 일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경제적 조건보다 감정적 소통과 동반자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 차이로 인해 결혼 적령기에 부모 자식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세대별 가치관을 존중하며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달, 매제 부부는 한국살이 5년을 위해 서울로 나오고 자녀들은 미국에 남는다. 여동생은 그 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함께 붙어 있을 때는 풀리지 않던 마음이, 떨어져 지내며 조금씩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부모의 사랑은 품어주는 데서 시작되지만,

놓아주는 순간에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이번 한국살이 5년이 매제에게는 부모로서 또 다른 깨달음의 시간이 되고, 조카들에게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아닌 이해와 화해의 시간이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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