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채널 구독과 콘텐츠 소비를 통해 구성하는 아이덴티티
누구나 가장 나답되, 가장 이상적인 자아를 찾고 싶어합니다. 더에스엠씨콘텐츠연구소는 2021년 출간된 <콘텐츠 머니타이제이션>에서 이러한 현상을 ‘베스트 아이덴티티’라고 정의했는데요. 사람들이 베스트 아이덴티티, 즉 최상의 자아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근 소셜 미디어 유저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유저들은 개인 프로필을 직업, 거주지, 학력, 고향 등으로 구성해 왔는데요. 최근에는 개인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경험, 취미, 선호 혹은 불호처럼요. 그래서 오늘날 가장 이상적인 자아는 ‘Best’가 아닌 ‘Curated’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단순히 최상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최적화된 자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아 형성 방식을 Curated Identity라고 정의합니다.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능력, 태도, 느낌을 포함한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 개념을 스스로 수립해 나가는 것인데요. 많은 자료나 정보를 분류하여 그중 유의미한 것, 중요한 것 등을 선별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를 큐레이션이라고 하죠. 이처럼 유저들은 여러 크리에이터로부터 자신에게 유의미한 것만을 선별한 후, 마치 퍼즐처럼 알맞게 배열하여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 나갑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군가에 대해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프로필 사진, 피드 사진, 댓글 등을 살펴보면 인맥부터 취미까지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더 확실하고, 솔직한 Curated Identity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유튜브 구독 채널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처럼 누군가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누군가가 ‘생산한’ 콘텐츠가 아니라 ‘소비한’ 콘텐츠를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Curated Identity라는 키워드와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셜 미디어 유저의 사회적 관계, Social Circle은 소셜 미디어상에서 형성됩니다. 유저들은 이 관계에서 자아를 형성하고 개혁하는 창의적인 과정을 즐기죠.
다만, 이 관계에서 상호성은 더 이상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친구 관계는 자신과 상대방 모두가 서로를 ‘친구’라고 인식했을 때 형성됩니다. 그리고 유대감을 쌓아가며 서로서로 준거 집단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런데 소셜 미디어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한 개인이 특정 크리에이터를 팔로우하고, 그의 콘텐츠를 접함으로써 일방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죠.
크리에이터는 개인임에도 준거 집단 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요. 기존의 사회화 방식이 다수의 사회적 집단을 준거로 두었던 것처럼, 크리에이터도 하나의 사회화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 타인의 가치관 형성에 기준점이 될 정도로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유저들이 자신이 접하는 모든 크리에이터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Interest Graph를 기반으로 여러 카테고리의 크리에이터를 구독하는데요. 여러 크리에이터의 특성을 모두 수용하여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Social Circle을 구축하죠. 특히 오늘날 크리에이터 선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성’입니다.
유저들이 진정성에 주목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캐릭터의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과거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타고난 환경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자수성가’형 연예인들의 스토리가 각광받았죠. 이후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른바 ‘금수저’형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플렉스’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요. 명품 쇼핑 하울, 호캉스 브이로그 등 콘텐츠에서 엿볼 수 있는 크리에이터의 유복한 일상이 유저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준이 대리 만족을 넘어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유저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재력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진정성이 주목받게 되었죠. 같은 하울 콘텐츠라도 쇼핑한 물건들을 단순히 보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단점까지 솔직하게 공유하며 구독자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요.
마케팅은 크리에이터 콘텐츠 중에서도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광고를 기피하는 유저들에게 자연스럽게 광고를 노출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오랜 시간 계속되어왔죠. 이제는 콘텐츠에 광고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만큼 광고 제품과 크리에이터의 관계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기존에 해당 제품을 꾸준히 사용해왔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입니다. <환승연애2>에 출연했던 ‘해피해은’은 갤럭시 유저로 유명합니다. 핸드폰, 태블릿, 이어폰, 스마트워치까지 몇 년 동안 갤럭시 제품을 애용하고 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SK텔레콤의 갤럭시 폴더블5 단말기 프로모션 콘텐츠가 업로드되었을 때, 구독자들은 광고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죠.
유저들이 소셜 미디어상에서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표현과 밀접했습니다. 이상적인 자신의 베스트 아이덴티티를 설정한 후, 이를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이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선별하는 것이 최상의 자아를 구성하는 과정이었고요.
특히 지적이고 교양 있는 모습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독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내보이기에 적합한 키워드 중 하나죠. 실제로 미래엔의 독서 패턴 분석 결과, ‘인증샷+찍다’와 함께 언급되는 콘텐츠로 책(882건)이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인증샷은 1위인 여행(1,524건)과 3위인 공연(392건)과 같이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이를 드러내기 위해 촬영하는 사진을 의미하는데요. 독서 또한 직접 책을 읽는 것만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공유하는 게 중요해진 것이죠.
그리고 오늘날의 유저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피드뿐만 아니라 나만 볼 수 있는 구독 목록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처럼,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주는 크리에이터를 구독하는 것이죠.
이러한 니즈 덕에 지식교양 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코리아에서 선정한 2021 유튜브 8대 트렌드에 ‘부캐’, ‘쇼츠’ 등과 함께 ‘지식정보형 채널의 부상’이 뽑혔을 정도였는데요. ‘조승연의 탐구생활’이나 ‘셜록현준’처럼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는 대형 채널로 성장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해당 채널의 구독자들이 어떤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지 대략 유추할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터가 이들의 Curated Identity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준거집단의 역할을 했으니까요.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그 영향력은 타깃팅을 하는 데 좋은 기준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는 패션 브랜드인 ‘띠어리’의 광고를 진행했는데요. 뉴욕 첼시에서 발전한 패션의 역사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띠어리의 제품을 소개합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뉴욕 패션의 역사와 함께 풀어냈는데, 이는 조승연이라는 크리에이터가 가지고 있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이미지와 잘 맞물리죠. 또, 평소 영상에서 그의 패션도 항상 심플한 스타일이었기에 더 매끄러운 협업이 가능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의 하단에는 ‘보기만 해도 좋다’와 같이 만족감을 표현하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댓글을 통해 또 다른 대리 만족 욕구의 표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죠. 이처럼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한다는 것은 꽤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Curated Identity를 형성하는 과정도 유사합니다. 유저들은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통해 대리 경험을 하는데요.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통해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간접적으로 겪음으로써 견문을 넓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경험도 있고, 특별하지만은 않은 경험도 포함될 겁니다.
먼저 특별한 경험으로는 여행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조차 쉽지 않던 시기에 전세계를 누비는 여행 유튜버의 콘텐츠는 많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특히 대리 ‘만족’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독특한 테마가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죠.
일반적으로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미리 계획을 세운 후 유명 관광지를 부지런히 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에 나가는 것은 큰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인 만큼 최대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심리니까요. 하지만 여행 유튜버 ‘원지의하루’의 콘텐츠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원지의하루’는 미국 슬리핑 기차에서 34시간을 보내는 영상, 라마단 기간의 이집트 여행 영상 등 특별한 여행 경험을 공유합니다. 34시간 동안 슬리핑 기차를 타고 도착한 시애틀에서는 10시간 만에 관광을 끝내고 돌아오기도 하고요. 이러한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 혹은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 등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하게 됩니다.
한편, 특별하지 않아 더 유의미한 대리 경험도 있습니다. 바로 연애인데요.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메인으로 다루는 연애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별한 커플들이 새로운 연인을 찾는다는 콘셉트의 ‘환승연애’, 결혼이 간절한 솔로들이 짝을 찾는다는 콘셉트의 ‘나는 SOLO’ 등 그 종류도 다양하죠.
연애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연애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연애 감정, 혹은 연애에 수반되는 다양한 감정들은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출연자들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죠. 프로그램 내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선택이나 판단을 지켜보고,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기도 하고요.
유저들이 이렇게 공들여 형성한 Curated Identity의 특징은 바로 유연성입니다. 특정 환경이나 상황적 요구에 맞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약 70%의 Z세대가 상황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한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크리에이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셜미디어 유저의 경우 그 유동성이 더욱 큽니다.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1~3년 주기로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인데요. 이는 Curated Identity에 영향을 주는 크리에이터가 교체되어서일 수도 있고, Curated Identity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유저들은 새로운 Curated Identity를 확고히 하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속성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만을 고르는 것인데요.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는지 또한 자신의 Curated Identity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죠.
크리에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해 브랜드 타깃층이 높은 가치를 매기는 속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해당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애플워치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이 기능인 유저를 타깃으로 한다면 헬스 크리에이터를, 감성인 유저를 타깃으로 한다면 패션 크리에이터를 선정해 협업해야 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