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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평 Aug 10. 2020

비다

빌다, 이제 그만 멈춰달라고. 

2020년 봄은 코로나 19가 가져갔고, 여름은 비가 가져갈 모양이다. 

일주일 사이 온 나라가 비에 잠겨버렸다. 


이동하는 도시마다 그 도시의 이름으로 안전문자가 도착했다. 

호우주의보가 경보로 바뀌었다가, 산사태 위험을 알렸다가 

교통통제 안내로 바뀌기도 하고, 홍수경보가 오다가 

급기야 태풍 관련 안전사고에 신경 쓰라는 문자가 왔다. 


다들 이런 비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마가 아니라 기후재앙이라고도 한다. 


나야 이만큼 살았고 아무리 더 살아봤자 지금껏 산 세월만큼일 게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다는 것도 알고,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는 것도 알고 

미세먼지란 존재조차 몰랐던 시절도 살아봤고,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춥긴 했어도 살인적인, 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은 아니었던 시절도 살아봤다. 


살다 살다 이런 비는 처음이고, 이런 난리도 처음이다. 

한여름에 마스크가 필수가 될 줄은 몰랐고, 

해가 쨍하게 떴어도 10분 후에 세찬 비가 쏟아질 수 있음도 이젠 경험으로 알게 됐다.

예측불허의 일상.  


참 이상하고 불안한 시절을 살고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아이가 언젠가 울며 말했다. 

온 나라가 처참한 슬픔에 빠져있었던 봄이었고, 

아이의 친구가 부모의 이혼으로 방치된 채 홀로 아프다 끝내 세상을 떠난 해였다.  

"나는, 우리는 아직 어른도 아닌데,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왜 죽어야 해?" 

뭔지는 모르지만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했을 터였다. 어른들의 잘못이거나 전 세대의 잘못이라고 질타하는 말 같았다. 아마도 그 안에는 나도 있었을 테지.  


벌 받는 것 같아서, 사람 아닌 것들을 모질게 대한 죄를 돌려받는 것 같아서...  

이제는 좀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하겠다.  


내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적어도 '당신들이 잘못 산 탓에 우리가 힘들게 살고 있잖아.' 

이런 말은 듣지 않도록.    


어쨌든 지금은 당장 달리 할 일이 없다. 

닿을지 모르겠으나 하늘에 비는 일 밖에. 이제 그만 멈춰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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