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평 Aug 06. 2020

우연히 당신을 봤어요

밥집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1인 샤부샤부 전문점이다. 

주방에서 일하지만 홀이 바쁘거나 사장님이 다른 볼 일이 있을 때 가끔 홀 업무를 보기도 한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세팅하는 일이다. 

손님 중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오기도 하지만 혼자 와서 휴대폰을 앞에 두고 먹는 이가 더 많고, 

혼자 오는 사람들 중에는 20~30대의 젊은 사람도 있지만 50이 훌쩍 넘는 중년층, 70,80대의 노인도 꽤 있다.

 

오늘은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 손님이 쭈볏쭈볏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bar 구조라 의자에 앉은 손님과 서 있는 나의 눈높이가 얼추 맞아진다. 

마스크 너머로 주문을 하고 받고, 세팅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머뭇머뭇, 한다. 

"처음 온 건 아닌데...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맨날 따라만 다녀봐서.." 


재료를 넣는 데는 별 순서가 없다. 그냥 와르르 쏟아붓는 게 내 스타일이라 내 방식대로 알려주고 

소스와 양념에 대한 안내를 하고 돌아서는데 "고마워요.." 라고 답을 한다. 


우리나라 50대 이상의 남편이, 아버지가 저런 모습이겠지 했다. 

아내를 따라 자식들을 따라, 가자면 가는 대로 따라왔을 테고 챙겨주는 대로 먹었을 테고, 

계산만 알아서 해 왔을 테지. 그래서 그게 못마땅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쓸쓸해 보였다. 

오늘은 왜 혼자였을까? 그런 궁금증도 생겼고. 

어쨌든 그 손님은 맛있게 먹었다며 기분 좋게 떠났다. 

그의 쓸쓸함이 좀 달래졌을까? 

 



자주 와서 아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다녀갔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한 여자 손님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와 앉아서는 세팅이 끝나자마자 하소연을 했다. 

우울증이 있다며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나왔다며, 

내가 들어도 되나 싶을 만큼 사적인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단골손님 중에 꼭 한적한 시간에 혼자 오셔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가는 어른이 있다. 

70대쯤일까 했는데, 나중에 내 나이가 몇으로 보여요 하며 꺼내놓은 연세는 아흔하나. 

명품 브랜드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차림에 센스 넘치는 장신구들에 

네일숍에서 관리받은 듯한 손과 미용실 실장님의 손길이 닿은 듯한 헤어. 

화려함이 남다르다 생각했는데 그 모습이 나이 들어 주책이다가 아니라 

와, 저 연세에도 자기를 가꾸며 사는 게 참 멋있다..싶은 손님이었다. 

나이 칠십에 가까워 운전면허를 땄고, 지금도 직접 운전을 하신단다. (나는 20년째 장롱면헌데...) 

네일숍은 주기적으로 들러 관리를 받고, 집 앞에 나가더라도 반드시 화장을 한다며 

자기를 가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씀하셨다.  

한적한 시간에 오시는 건 아마도 혼자 식사에 말동무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신 끝에, 당부처럼 

"즐겁게 살아요, 지금이 젤 좋은 때야, 즐기면서 살아. 걱정하지 말고." 

한마디를 덧붙여하고 가셨다. 마음에 남는 말이다.  


아들과 함께 온 엄마는 아들 먹을 음식만 시키고는 옆에 앉아 먹는 걸 지켜보았는데 

'엄마 난 한우' 로 시작해 추가로 또 한우를 주문했다. 

가까운 미래에 '엄마는 짜장면을 싫다고 하셨지' 를 노래할 아들 같았다.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 보였고, 조금 지쳐 보였다. 


있지도 않고, 있지도 않을 남편이지만 내 남편은 저랬으면 좋겠다 싶은 매너 좋은 손님도 있었는데 

입 닦은 휴지를 모두 챙겨 가는 손님이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남을 위한 배려인 듯해서 좋아 보였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꼭 공중화장실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꼭 1인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혼자 먹을 수 있게 세팅된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이라 그런가. 

혼자 와서 밥을 먹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의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피해서 

가장 한적할 것 같은 시간에 두세 자리를 띄어놓고 식사를 한다-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 

특히 먹으면서 휴대폰을 본다거나 내내 통화를 한다거나 계속해서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다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언제인가 허튼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심야식당' 같은 밥집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특별히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손맛이 있지도, 창의적인 인간도 아닌데 

밥집 주인이 되면 그저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고, 슬픔을 달래고,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때였다. 그때 한 친구가 그런 밥집 주인이 되려면 먼저 건물주가 되어야 할 거라고 했다.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한 꿈이 되었지만. 


대신 지금은 다른 꿈을 꾼다.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 같은 사람이 되자고. 될 수 있을까? 


그럼 먼저 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나 혼자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