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 마을, 산토리니 - 그리스
사랑하는 사람한테 편지를 써 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랑의 말을 적어 내려 가다 생각이 막힐 때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이아 마을의 한 레스토랑에서 사랑의 편지를 썼던 적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여행 와서 보고 느낀 것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변변치 못한 솜씨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노트 위에 편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묘사할 것들을 다 끝내고 편지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 중이었다. 뭐라고 써야 감동적 일지 고민하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다.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일터에 나간 사람들은 빨리 집으로 귀가해야 한다. 그래야 노을을 볼 수 있다. 모든 노을이 그렇듯, 이곳의 노을 역시 갑자기 시작됐다가 한순간에 끝나버린다. 다만 체감상 그게 더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아 마을은 어디에서든 노을을 볼 수 있다. 노을을 보기 위해 어딘가로 떠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언제든지 집 앞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이런 노을을 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을 꼽자면, 위 사진에 보이는 작은 종이 있는 길이다. 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은 마음에 편지 쓰는 것을 잠시 그만두고 일어섰다.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몰려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주홍빛 파스텔이 뭉게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같은 하늘인데 이렇게나 극명하게 색이 나뉠 수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구름이 흩날리면서 주홍빛을 파란 하늘에 전염시킨다. 이 신비한 광경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지켜봤다. 노을로 색칠된 붉은 하늘은 더욱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그 자리에 서서 아름답게 소멸해버린 것들의 여운을 잠시나마 즐겼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에 품은 채라 그런 건가? 이 노을을 본 뒤로 신혼 여행지는 무조건 이곳으로 오고 싶다는 확신이 섰다. 그때 내 옆에 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꼭 껴안고 이 노을을 바라보고 싶어 졌다.
숙소에 들어가 마무리한 편지는 나도 모르게 예쁜 말들로 차곡차곡 쌓여나가고 있었다.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들으면 예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삭막해져서 예쁜 것들로 가득 채움 받고 싶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콤한 상상을 꿈꾸고 싶을 때, 나는 이아 마을의 노을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