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쿄이, 이스탄불 - 터키
여행을 오래 다니다보면, 가끔식 내가 타국에 있는 게 맞는가 싶을 때가 있다.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다보면 생각보다 동향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럴때면 이곳이 한국인지 여행지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그 나라의 사람들보다 여행객들을 더 자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관광지로 여행을 온 건지, 그 나라 그 도시로 여행을 온 건지 고민하게 된다.
막상 여행을 다녀와서 '거기 어땠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 이 생각이 강하게 든다. 분명 다 좋았는데 내가 들른 관광지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할 순 있어도, 막상 그 나라와 도시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탄불에서 들른 카디쿄이의 하루는 조금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 하루 덕분에 누군가가 이스탄불에 대해서 물을 때 단순히 관광지를 묘사하지 않는다. 도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지, 등등을 말 할 수 있게 됐다. 카디쿄이는 그런 매력을 한껏 뽐내는 곳이다.
카디쿄이는 이스탄불을 구성하는 세 큼지막한 구역 중 아시아 지구에 속하는 곳이다. 왠만한 숙소는 유럽 구시가지에 있을텐데, 에미뇌뉘항에서 페리를 타고 카디쿄이(Kadıköy Çayırbaşı)항에서 내리면 된다.
페리에서 내린 뒤 곧바로 조금만 가면 카디쿄이 시장이 나온다. 시장 중앙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국적인 악기들로 버스킹을 한다. 새삼 홍대거리가 생각나는 곳이다. 그만큼 사람 냄새가 짙은 곳이다.
낯선 국가의 노래에 낯선 악기였지만 생각보다 들을만 하다. 음악에 진심을 다하는 게 청년들의 얼굴에서 느껴진다. 국가와 인종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길을 걷다보면 종이컵에 아이스크림과 벌꿀 밀랍을 담아 먹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호기심에 근처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벌꿀 아이스크림을 구매했다. 생각해보면 이때만 해도 한국에 벌꿀 아이스크림 붐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나름 신세계였기 때문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먹었지만 지나치게 단 벌꿀 때문에 현기증마저 왔다. 터키는 투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단 음식들이 엄청나게 많다. 현지인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군것질거리를 사서 그들처럼 거리를 걸으며 먹는 것도 낭만이 있다.
시장을 지나 거주구로 들어가면 더 짙은 향이 난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곳에 와서야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호기심, 무관심, 경계가 섞인 현지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이 거리를 자유롭게 누비기 시작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평범함'을 만끽하는 것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평소에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일들이 낯선 곳에서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이스탄불에서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주택가를 거니는 것이 기억에 남는 귀중한 추억이 되는 걸 보며 느낀다. 거리를 걷는 행인들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다보면 한명한명이 풍기는 짙은 향기를 맡게 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여행자처럼 거리를 거닌다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변 환경들도 나에게 짙은 향기를 풍기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