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대한 나의 후회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과연 그는 어떻게 아버지로서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가 떠나고 나서 그의 회사 동료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하나같이 하던 말이 있다.
"아들한테는 미안한데, 아버지는 아들보다는 딸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었어요."
그들이 꽤나 미안해하며 얘기했음에도 사실 나에겐 이런 것들이 전혀 상처 비슷한 것조차도 되지 않았다.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나는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도, 걱정이 되는 존재도, 어떤 힘이 되는 존재도 아니었다. 아마 그에게 나는 선인장 같았을 것이다. 대충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 자라는, 하지만 딱히 눈길이 가진 않는. 집에서 키우는 방울토마토가 한두 방울의 열매만 맺어도 신나서 이런저런 스몰토크거리로 쓰이는 것에 반해, 일 년 내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선인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들다고 할 걸 그랬다. 힘든 적이야 당연히 많았지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겪고 있는 힘듦은 대부분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문제들에서 기인한 것이었기에 그에게 말할 연유가 없었고 그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뭐 아주 없지는 않을 거고 한두 번은 했으려나.
여하튼 그래도 더, 힘들다고 말했어야 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오니 무작정 대가리를 들이밀어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많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선인장 같은 아들과 방울토마토 같은 딸, 둘 모두의 아버지가 되었겠지.
그런데 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걸 모두 알고 있었는지 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고, 세상은 그걸 모두 알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도 그렇게 고된 것인지 싶고, 그리고 그게 그렇게 무서워서, 그 어린 나이의 나에게도 60까지만 살고 죽겠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건지, 그렇게 살다가는 그 나이가 돼서 정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던 건지 싶어 선명하게 두렵고 슬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다고 했으면, 사는 법을 좀 알려달라 했으면, 일찍 죽지 말라했으면 좀 달라졌을까 싶어 그냥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