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90% 수학교사 일기-9

글을 쓰는 이유

by Theta

얼마 전엔 마음씨 좋은 동료 선생님 덕에 노을을 보러 노들섬에 다녀왔다. 곧 공사에 돌입하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가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런 분이 없으면 나는 집에서 메이플스토리를 켜고 레벨업에 열중하고 있었을게다. 그것 역시도 나름 진심으로 뿌듯한 일이지만.


다만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찐 내향인의 본성 탓인지 오래간만에 좋은 곳에 외출한 탓에 텐션을 주체 못 하고 욕도 좀 하고, 화장실 갔다가 자리도 못 찾고 그랬던 건 좀 후회가 된다. (사람이 너무 많고 밤이어서 찾기 힘들긴 했다.) 같이 간 선생님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기 때문에 나의 그런 모자란 모습을 보여드리기 부끄러웠다.


역시나 나는 사실 글을 쓰는 게 대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그다지 달변가가 아니기도 하고. 내 소리를 내가 듣는걸 별로 안 좋아한다. 그렇지만 글을 매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을 손가락으로 토해내고 싶은 메스꺼움으로 가득한 날들이 있다. 오직 그런 날에만 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 이글루스라는 플랫폼에 일기를 적기 시작했는데, 모든 글은 비공개였다. 오로지 나만 보기 위한 글이었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안경이나 렌즈 없이 다닌 날이 많았다. 충분히 많이 다녀 익숙해진 공간들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안경이나 렌즈를 살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렇게 다니면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그런 날들에는 집에 와서 꼭 글을 쓰게 되었고, 그때 씌어진 글들은 내가 바라보던 세상과 닮아있었다. 나의 글은 항상 채도가 낮았다. 이리저리 주절거렸으나 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건지 알기 힘든 문장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적으면 그때의 나의 생각이 나에게조차 읽히지 않아 좋았다.


이글루스에 써 내려간 수백 편의 글은 모두 사라졌다. 이글루스가 서비스를 종료했기 때문이다. 수차례 백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글들은 무언가를 잊기 위해 적혔기 때문에 이글루스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 글들의 소임을 다한 것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여기에 글을 쓰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안도감과 기대감이 다가온 것으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 생긴 것으로. 그리고 주어진 시간들을 부끄럽지 않게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담긴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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