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홈메이드 맥앤치즈가 유발한 이야기

“다른 사람도 G를 사랑해서 행복해“

by 밤지

미국 홈메이드 맥앤치즈가 유발한 이야기

"이거 완전 미국 홈메이드 맥앤치즈 모습이야."


어느 날 저녁, Z가 미국에서나 볼법한 맥앤치즈, 콘브래드, 파이를 파는 식당을 배달앱에서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IG 등을 살펴보니 한국계 미국인 분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리얼 고향맛일 가능성 꽤 높은 것 같아."


Z는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의 맥앤치즈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숲에서 야생 베리를 땄던 일과 할머니가 그 베리들로 파이를 만들어주셨던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ㅡGrandma takes the berries and turns it into a pie just like that.


Z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일이라니 그야말로 가족의 역사이고 전통이었다.

작은 통을 들고 오순도순 숲길을 걸으며 야생 베리를 따는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올봄, Z와 함께 미국에 가서 Z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뵈었고, 사진으로 Z의 다섯, 여섯 살 때 까불까불한 얼굴도 보았기 때문에 그 가족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상상됐다.


할머니는 보통 허클베리로 파이를 만드셨다고 한다.

허클베리를 찾아보니 블루베리와 색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블루베리보다 조금 더 작거나 붉은색을 띠는 것이 있어 느낌이 조금 달랐다.



사진제공: Z



"이 사람 확실히 미국인이다. 한국에 이런 맥앤치즈 없어. 집에서 leftover 맥앤치즈 먹는 느낌 나."


Z는 아버지가 해주시던 맥앤치즈와 콘브래드가 더 맛있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블루베리 파이를 포함한 모든 음식에 만족스러워했다.


ㅡDad uses sharper cheese and probably more salt for the mac and cheese, so the flavor is stronger. But the texture is absolutely identical. (식감은 아빠가 해주시던 것과 똑같다)



내게 제일 인상 깊었던 맥앤치즈는 올봄 Z와 함께 부모님 댁에 가기 전 잠시 시애틀을 여행할 때 호텔 식당에서 조식으로 시켜 먹었던 것이다.

맛보다는 식감이 내게 준 감각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통통하고 폭신폭신한 파스타가 볼 안쪽에 부드럽게 닿는 느낌, 입안을 풍성하게 꽉 채우는 그 새로운 느낌에 반해 눈이 번쩍 뜨였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호텔에서 조식으로 시켜 먹은 맥앤치즈





생각해 보니 Z와 처음 만난 날 저녁에도 사이드로 맥앤치즈를 시켰었다.


시리게 찬 바람과 함께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좁은 길에 우산까지 쓰고 오가는 사람들의 여파로 도저히 나란히 걸을 수 없게 되자 Z는 나를 앞서 걸어가면서 두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 눈을 마주쳤다. 짙은 남색 코트를 입고 있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식당에 들어가 피자와 맥앤치즈를 사이에 두고, 작은 숲에 둘러싸인 미국의 부모님 댁과 거기에 살고 있는 하얀 강아지ㅡ다람쥐와 사슴을 좋아하고 사람과 집 밖 산책을 무서워하는ㅡ G 얘기를 하며 눈을 반짝이던 모습도 선명하다.


시간이 흘러 그 이야기 속의 숲을 직접 거닐고, 일주일 동안 그 집에 머물며,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G를 볼 수 없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환대든 경계든 무언가 반응을 기대했는데, 조용한 가운데 등뒤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말씀에 심장이 서늘하게 흔들렸던 순간의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G는 Z의 가족이 임시보호 하다가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낸 프렌치 불독이다.


“그 집 가서 바닥에 똥 싸.”


Z는 입양 가는 G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G는 새로운 가족 집에서 일주일 동안 배변을 보지 않았다. 새 가족은 G의 불편한 마음을 읽고 Z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Z는 G가 자기 말을 이해하긴 했는데 약간 엉뚱하게 알아들었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처음 Z 집에 왔을 때 G는 새로운 환경에 겁이 났던지 음식마저 거부했다. 그러다가 Z가 얼음 하나를 조심히 내밀자 할짝대며 호기심을 보이고 그 뒤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어머니가 드시던 과자를 Z에게 하나 주시면 '쟤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냐'는 듯 Z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짖었다는 이야기도, 불시에 가족들 콧구멍 속에 혀를 쏙 집어넣는 것이 G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였다는 조금 더러운 이야기도, 집 마당 밖을 무서워하지만 마을의 우체통이 모여있는 구역만은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겨울에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면 그 눈이 배에 닿아 G가 싫어했다는 이야기도, 그때의 툴툴거리는 G의 모습과 소리를 상상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떤 존재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정이 들고 사랑할 수 있구나.'


G를 언제 볼 수 있을까, 그날을 기대하며 상상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날아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즈음 G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당장 손을 뻗어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자주 일었다. 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구나, 본 적 없어도 그리워할 수 있구나.

Z가 조금씩 조금씩 나눠준 G의 이야기들이 내 안에 조용히 들어앉아 마침내 단단한 G의 자리가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