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남자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포획한 영어 & Z와 나를 이루는 이야기
2023년 12월, Z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그는 미국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다.
우리는 대화할 때 90퍼센트 이상 한국어를 사용한다.
Z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2년 넘게 한국 회사에서 한국어로 일을 하다보니 이제 미국에 가서도 무의식중에 한국말을 하는 경지에 올랐다.
반면 나는 영어로 말하기 영역에서 특히 취약하다.
어쩌다 Z의 주문으로 영어를 하려고 하면 마치 한국 사람 앞에서 영어를 하는 것처럼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Z는 종종 영어로 말하거나 문자를 하는데 그때 특별히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다. 주로 이런 것들이다.
ㅡ처음 보는 단어: 이제껏 몰라서 못 썼다(예: thawing)
ㅡ보긴 봤지만 낯선 단어: 익숙하지 않아 현실에서 써본적 없다(예: identical)
ㅡ문맥 속에 살아있는 단어: 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쓰는 거구나, 득템!(예: come out ahead)
나는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툭툭 나오는 보물같은 영어와 그 쓰임새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기로 했다.
한 회마다 하나의 주요 단어(또는 표현)와 그것이 유발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이 기록이 다른 사람에게도 쓰임이 있길 바란다. 단어 하나라도 작정하고 공부하고 맥락 없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테니,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어떤 모임에는 자식이나 손주 자랑을 하는 사람이 그 날의 밥값을 내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내 이야기를 보시는 분들이 ‘맨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뭐라도 얻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어는 내 글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끼워넣은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 기록을 통해 나와 Z의 이야기, 우리를 이루고 이어주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하자면, 지금까지 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으로만 살다 보니 생산자의 입장도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쓴다. 오래전 문득 든 생각이 드디어 형체를 이루었다.
Here goes nothing.
뚜렷한 목표나 목적은 없지만 지금 단순히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하나의 점이 되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무엇하고든 연결되고 연쇄작용을 일으키리라는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쓴다.
'그때 그걸 할걸', '그때 그걸 했으면 지금 도움이 될텐데'라는 후회와 자책의 순간이 내 인생에 다시는 없길 바라며, 뭐라도 시작한다.
*필자는 내면의 영적인 힘은 믿지만 종교는 없습니다!
(제목의 '하나니'때문에 오해하실까 봐 우려되어 미리 몇 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