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크고 넓은 곳이었다.
'과감히', '무모하게', '당당하게'처럼 힘이 있고 진취적으로 향해가는 단어가 어울리는 이십 대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갭-이어라고 해서 특별히 '내가 그걸 하고 있습니다.'라고 어디 알릴 곳도 없고, '내가 이걸 하는 중입니다.' 하고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단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며 내가 모든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갭이어’였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기 전 겨울 방학에 나는 휴학은 했다. 빠듯한 형편은 나를 다그치기 바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2학년을 마치면 3학년이 되고, 그렇게 4학년이 되어서 취업을 하는 것이 집 안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였다. 취업을 해서 집안 살림과 아버지 빚을 조금이라도 빨리 갚아야만 했던 미래의 시간은 대학생이 달려가기엔 잿빛 미래였다.
누가 뻔히 보이는 캄캄한 미래에 자신을 걸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정해진 미래가 있으니 그 미래를 향해 지금부터 천천히 전진하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던 미래에서 내가 기대하고, 소망했던 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는 일'이었다. 원하지 않는 빚을 갚아 나가야 하는 미래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안에 맏이로 태어난 덕분에 자존감 하나는 누구보다 높게 자랐다. 내가 뭐든 하면 세상에서 제일 기쁘게 반응해 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학교를 다녀와 재잘거리던 나의 이야기를 시니컬하게 들어 주시 던 외할머니의 육아는 좋은 양분이 되어 나의 성장에 거름이 되어 주었다.
뭐든지 하기만 하면 응원해 주시던 부모님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온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당신들은 외국을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시며 잘 준비하고, 떠나야 한다는 말씀을 빼먹지 않으셨다.
호주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큰 대륙이었다. 어디에 있다고 해도 그곳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걸리는 곳이었다. 도시 간의 여행을 위해 버스에 오르면 3-4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은 가까운 곳이었다. 8시간씩 버스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도시 간의 거리뿐만이 아니었다. 일을 찾아 농장으로 들어갔을 때는 끝이 안 보이는 농장의 규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조금 솟아난 곳에서 농장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는데 마치 지평선이 있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농장의 크기에 놀라고 일하는 농장 일꾼들에게 다시 한번 놀랐다. 끝없이 들어오는 출근용 승합차와 도착한 승합차에서 내리는 인원은 마치 학교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인원이 군집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기차를 1박 2일이나 타고 가야 하는 호주는 나의 자라 온 환경에는 전혀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보이는 것이 새롭고, 경험하는 것이 모두 처음이었다.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해서 지루하거나 심하게 외롭지는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2살의 나이는 어리고 뭣도 모를 수밖에 없는 나이인 것 같다. 괜히 어른인 것 같이 사고하고 행동했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하고, 생각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절대로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호주의 생활이 나에게 첫 '갭이어' 이자 한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시기임에는 분명했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신 할머니와 부모님, 그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나의 용기가 맞아 들어가 20대 초반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떠나야 하는 나라가 호주는 아니어도 괜찮다. 심지어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지금은 앞만 보고 달려야 해"라고 말하는 20대는 당신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음이며 청춘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10년의 미래에 당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보다는 지금 당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시계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배우고 싶은 일을 배우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면 좋겠다. 외국을 나가건 한국을 여행하건 많은 도시를 보고 오면 좋겠다. 산의 모습과 바다의 모습을 보고 강의 모습과 초록의 밭의 모습을 기억하고 살면 좋겠다. 핸드폰 속에서만 재생되는 자연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자연이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는 일부러 돈을 들여 여행을 하지 않아도 주말에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유람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당일로 다녀올 수 없는 곳이면 하루 자고 오는 경우라도 꾸준하게 여행을 다녀보고자 하는 편이다. 짧게 그곳에 머물면 늘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면 다시 그곳을 가기 위해 시간을 내고, 다른 사람의 여행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만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방식을 배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의 방식이야 말로 새로운 내 것을 만드는 귀한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삶을 사는 당신이든 응원하지만 우리의 방식에는 우리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삶의 방식은 각자가 다르지만 우리의 삶엔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내가 호주를 같다가 오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휴학을 했고,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투자했으니 말이다. 삶은 그렇게 정해진 인과를 정해 놓고 나의 선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호주를 가기 위해 했던 휴학으로 내 졸업이 한 해 미뤄졌다는 것에 대한 책임. 다녀와서 다시 등록금을 벌어야 했던 나의 경제 사정은 고스란히 나의 책임에 대한 책임이었다.
그리 무겁지만 않은 책임이었다. 조금만 힘을 들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었고, 일 년이 늦었다고 해서 내 일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위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젊음이면 좋겠다. 그게 당신의 미래를 드라마틱하게 바꿔 주지 않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