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어.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by SseuN 쓴

나의 20대 중에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호주를 다녀온 일이 아닐까 싶다. 이미 15년이나 더 된 일을 영웅담인 것처럼 꺼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낸 그 시간이 지금의 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등학교 시절 공개 수업날이었다. 까만 칠판이 있는 작은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걸상이 지나갈 틈도 없이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절 한 반에 40명씩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다소 답답할지도 모르는 공간에는 초청된 부모님 몇 분과 장학사 및 교장, 교감 선생님이 뒤편에 서서 수업을 참관하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공개 수업은 당일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기에 선생님은 2학년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될 것을 우려한 니 머지 연습과 연습을 거듭했다.


아주 소심했던 나는 그분들이 다 나갈 정도의 시간인 수업 후반부에 발표 순서를 맡았고, 평소에 반에서 발표를 잘한다는 친구들은 수업 초반에 발표 순서를 맡았다. 수업은 전체가 대본이었다. 발표를 맡은 학생부터 지목을 하는 선생님까지 모두 짜놓은 각본에 의해서만 움직이기로 약속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욕심이 과했는지 우리가 정신없이 굴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발표 차례가 되면 손을 들기로 약속된 학생 이외에도 많은 허수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때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은 발표하기로 약속된 친구가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셨고, 아이들은 그 모습이 더 우스웠는지 더 손을 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자기를 지목해 달라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려 귀 옆에 붙였다. 누군가는 손을 들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내 차례가 아니었고, 발표를 할 내용 이외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짝꿍은 여자 아이였는데, 워낙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모든 발표 시간마다 손을 들었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 모습이 부러웠는지 아니면 잘 보이고 싶었던 건지 나도 그만 손을 들어 버렸다. 그때, 한참을 손을 안 들다가 들어 버린 나와 선생님은 눈이 마주쳤고, 당연하다는 듯 나를 지목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 할 일인가? 하지만 그 일을 잊지 못하는 것은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 일이 아이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만나면 그 이야기를 종종 하기 때문에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부끄러움도 많았던 아이였다. 평소 수업시간에도 절대 발표를 해본 적이 없던 내가 그토록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대로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만 서서 울어 버렸다. 아주 서럽게 말이다. 울보가 된 첫날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이 되었다고 특별히 달리진 것은 없었다. 특별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가진 학생도 아니었고, 사고 안 치고 공부 못하는 그런 부류의 학생 정도였다.


가족들은 내가 호주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행동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가겠노라 이야길 꺼냈을 때만 해도 못 미더웠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호주라는 낯선 땅으로 가려는 내가 전혀 믿음이 안 갔을 때였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그 일을 해냈고, 주관적인 이야기지만 훌륭하게 나름 잘 마쳤다고 생각한다.


말이 안 되는 도전을 하고자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무슨 일이든 꼭 그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 일을 시작하면 좋겠다. 스스로를 못 미더워하면 안 된다. 남들을 나를 못 미더워 할 수 있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러니 하고자 하는 일은 일단 시작을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성공적이다. 나의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못 해보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가장 큰 문제인 돈 문제부터 시작해서, 비자 문제, 신체검사, 예방 접종, 머무를 숙소 및 일자리, 입국 날짜까지 걸림이 없던 문제가 없었다. 다녀온 사람으로서 장담하지만 방금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것들은 당신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돈은 비행기를 타고 갈 정도만 있다면 출국이 가능하다. 비자는 신청만 하면 나오는 것이었고, (혹 반려가 된다 해도 다시 심사를 넣으면 충분히 발급된다.)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은 나 보다 병원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정병원에 도착하기만 하면 알아서 척척 진행해 준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해결하는 문제였는데, 이것도 날짜가 임박하자 각종 커뮤니티에 나와 날짜가 겹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급하게 사람을 구하는 자리도 많았다. 그러니 앞서 이야기 한 문제들은 전혀 문제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해 본 적 없이 쳐다만 보면서 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만 하는 사람에게 문제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혹여나 생각지도 못한 그 일이 막상 벌어진다고 해도 벌어진 뒤에는 아주 큰일이 아닐 수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고, 나에겐 처음인 이 문제는 이미 누군가는 해결했던 문제였다. 그러니 만만하게 봐도 될 문제들이다. 남들도 다 하는 걸 내가 못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낯선 환경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집이 좋고, 침대가 편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도 집이 좋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낯선 환경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나는 그곳이 내 집이다 생각해 버린다. 무슨 말인가 싶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불편할 곳이라면 집이다는 생각으로 다르게 보면 조금 편해지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낯선 숙소라도 천천히 둘러보고 집안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긴 테이블에서는 뭘 하면 좋을지. 작은 소파에서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미리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럼 조금. 아주 조금 익숙해진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구하고 찾아다닌다면 그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지게 마련이다. 물이 들어야 배를 띄울 수 있는 것처럼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들이 있다. 그때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발표하라고 하면 울어버린던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전혀 알지 못했다. 호주에서 만났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과정에선 번데기로 한참을 있어야 나비가 되어 나온다. 그 사이 번데기는 외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무방비로 노출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는 없도록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천적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오랜 시간 그 상태로 버텨야만 한다. 세월이 쌓이게 된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세월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을 돕는다.


하나마나하는 일은 없다고 믿는 편이다. 내가 쓴 글이 언제 종이에 글씨가 되어 나올지도 모르고, 이 글을 쓴다고 몇 명이나 읽어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선택을 지지하고, 행동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한 글자씩 힘을 들여 써본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지금은 어떻지 나도 모르지만 또다시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면 내가 했던 모든 일처럼 빛을 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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