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어 떫은맛을 내는 때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by SseuN 쓴
지금은 그때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어느 자리에 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혹시나 길을 가다가 만나기도 한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이 있었다.


S성, H(계열사), T0스 (방위 산업) 기업에 서류 통과 후 면접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확신을 하지 않는 편이라 세 곳에 모두 합격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하튼 대학 4년 내내 공부했던 결실이 조금은 빛을 발산하는가 싶은 시기였다. 지도 교수님도 좋은 곳에 취업 추천을 해주셔서 중소기업 중에서도 꽤나 이름이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 연구실에서 졸업 석사 논문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들리는 소리는 타자소리 밖에 없었다. 타자 소리의 울림은 빈 연구실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런 조용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타자 소리를 듣고 있으니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똑똑한 연구생은 아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연구실에 들어왔는데, 공부는 늘지 않고, 전공에 대한 지식도 그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학부 시절 선배와 대학원 동기가 되면서 동등하지만 후배의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생활하는 면에서도 부담이 있었다. 똑똑하지 않은데. 일은 많아서 늘 손발이 고생이었다. 나이 많은 동기도 있지. 후배라고 들어온 친구들은 내 학부 동기들이라 부탁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그래도 논문의 결실이 있었고, 취업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준비된 논물을 들고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배운 것을 살려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학력이라 오히려 취업이 안된다면 학부 졸업생등과 같은 입장에서 취업을 할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취업도 하고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대학원 졸업하고 외국으로 나가서 박사 과정을 준비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암튼 그날은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한 그런 날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H자동차 면접 날이 되어 천안으로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면접 장에서 먹을 간단한 초콜릿 과자를 챙기고 집을 나서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꾸만 몸이 굳고, 뭔가 편안한 느낌이 없었다. 그날에 나는 면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선택하지 않은 일이 긍정적인 결과 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엄청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이번주에 로또를 사지 않아서 1등에 당첨이 안되었다고 이야길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주변엔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말했고, 그 이후로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다녔다.


인간은 자라 온 환경을 벗어날 수 없기에 내가 자라 온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상가에 딸린 방 하나를 전전세로 들어갔다.


내가 자라 온 환경이 그리 넉넉지 않다고 이야길 한 적이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학원비가 밀리면 덜컥 겁부터 먹곤 했다. 물론 내가 만나 온 모든 선생님들은 좋으신 분이라 형편을 이해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려 주신다면서 공부를 가르쳐 주신 분도 계셨다.


졸업하는 시기에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조금 더 취업 자리를 알아보다가 안되면 교수님을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지만 그냥 그러라고 했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작은 방에 칠판 하나를 샀고, 큰 책상 하나를 샀다. 에어컨이 없어서 조금 더운 날엔 앞 상가로 연결된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당겨와야 했고, 추운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 주지 못해 김장 비닐로 창을 막아 두어야 하는 곳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했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모으는 것은 순조로웠다. 내가 살 던 동내였고, 내가 자라온 곳이었다. 이웃이 모두 가족인 그런 곳에서 내가 작은 공부방을 운영한다고 하니, 옆 집, 혹은 옆옆집에 있는 애들을 보내주셨다. 당연히 금액은 다른 곳의 1/3의 금액이었다. 단순히 월세와 출근하는 교통비, 거기에 점심 값만 살짝 더 얹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재미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더불어 시간도 빨리 지났다. 더우면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근처 교회에서 수업했다. 마음 좋은 목사님께서 문을 열어주셨고, 시원한 바람 속에서 공부를 했다. 너무 추워지만 히터에 난로까지 켰다. 그 위에 고구마를 올려 익혀 먹기도 했고, 물을 끓여 코코아를 타주기도 했다. 그런 하루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였고, 학생도 점점 많아졌다. 나 혼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던 20대 후반에 나는 어설펐다. 아들은 점점 소란했고,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조용히 시켜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는 중이었지만, 학생들의 실력은 그리 변화가 없었다. 점점 일에 치였다. 잘 모르면서 시작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치기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리석은 때였다. 스트레스가 붙어 활력이 없어지자 출근하는 일이 곤욕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고민을 참 많이 했다. 학생을 다 내 보낼 수도 없고, 더 큰 곳으로 옮기기엔 돈이 부족했다. 눈이 보이는 결과는 없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갔다. 아이들을 위해서 중대한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자 후배를 찾았다. 같이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후배의 사촌 언니는 나보다 훨씬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론은 생각보다 빨랐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맡아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애정 넘치는 이 공부방의 원장 자리는 새로운 선생님께 넘겨 버렸다. 진짜 설 익은 선택이라 할 말이 없다.


사고를 치는 것보다 그 사고를 수습하는 것에 더 깊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나의 젊은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은 어쩌면 무모하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볼 수 없는 계획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수입원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얼마 안 가서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그 당시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대학을 들어가서 봉사활동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애쓰는 친구들도 있다. 휴학을 하고 세상을 배우고 싶다고 아르바이트를 여러 가지 해보는 친구들도 있다. 여행을 하는 친구들, 다른 전공에 대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공부를 해보는 친구, 대학교를 옮기고 싶어 수능 공부를 다시 하는 사람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젊음을 사용하여 원하는 바를 찾아 나서고 있다.


무엇이든 해 봤던 지난날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연락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고, 같이 고민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동료도 생겼다. (그 작은 방에서 시작한 공부방은 그 크기를 키워 다른 상가로 이전했고, 두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내 마음에 짐이 되는 것은 그때 그 마음으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만났던 그 아이들을 끝까지 살피지 못했다는 마음과 교육비의 해택을 주고 싶었던 부모님 들게는 내 손을 떠난 이상 금액 조정은 불가피한 영역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를 구인할 때, 군필 또는 휴학생을 찾는 이유는 그 대상이 아직은 설익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무게를 알 수 없다는 판단에서 생겨난 이유다. 나는 생전에 들어 본 적도 없는 사회생활의 무게가 어떤지 전혀 몰랐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내딛는 걸음에 실린 무게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귀한 시기, 더불어 아이들의 관계성까지 실려 있었지만 나는 발을 내딛지 않아서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그 무게를 이해하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말이다. 평생을 일을 해서 모은 톤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차린 가게를 위해 핸드폰이나 보며 시간을 때워서 버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손님이 없고, 진열도 끝났으면 상관없다.) 내 가게는 아니지만 손님이 와서 친절하게 응대하면 가게가 잘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고깃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제자를 만나기 위해 가게로 밥을 먹기 위해 간 적이 있었다. 워낙 차가운 얼굴에 웃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가게에서 본모습은 달랐다. 친절하고, 상냥했다.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도 연차가 오래된 편이라 근무시간 조율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20살도 이렇게 일을 하는데, 시간만 때우자고 시작하는 일이면 안 하는 게 맞다.


누구나 설익은 시절이 있다. 맛을 내기 위해 보내는 인고의 시간이 된다. 한참 떫은맛을 내는 감이라는 과일도 익으면 더할 나위 없이 달고 맛있는 과일이 된다. 떫음을 바꾸어야 한다. 익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익기 위해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 남들에게도 설익음을 보이게 되면 피해만 주게 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은 남에게 피하를 주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때는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