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공포 극복기
여행을 하다 보면 우연히 기회에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마치 평범한 일상에서 일탈을 할 때가 있다. 나에겐 그게 바로 스킨스쿠버 수업이었다. 시작은 아주 평범한 아침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호주의 곳곳을 여행하기도 마음을 먹고 무거운 집은 당시 애들레이드에 있었던 친구의 집에 두고 가벼운 옷 몇 가지만 챙겨 나와 도시를 전전할 때였다.
농장에서 만났던 형들과 로드트립을 하면서 길에서 텐트를 치고 자 보기도 했고, 주유소 구석에서 차를 대 놓고 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캠핑장이 나오면 씻으러 들어갔다가 당일에 나와서 다시 여행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호주의 절반을 형들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홀로 시드니에 남게 되었다. 그 후로는 내가 준비해서 떠나는 나 홀로 여행의 시작이었다. 애들레이드에서 출발해서 캔버라를 지나 시드니까지 오는 길은 로드 트립으로 여행을 마쳤다. 멜버른은 출국하는 도시라 맨 마지막에 여행하기로 하고, 우선 시드니에서부터 가까운 위치에 있는 브리즈번과 케언즈가 다음 여행지가 되었다.
'가까운' 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호주라는 나라의 거리에 비해 가깝다는거지 생각보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던 터라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의 공항에 내려 시내 유스호스텔에 자리를 잡았다. 이 숙소는 백패커들의 숙소였는데, 국제 학생증을 들고 있으면 모든 지점에서 할인 및 적립이 가능한 멤버십카드를 발급해 준다. 그럼 그 카드를 쓸 수 있는 체인점의 경우에는 아침을 공짜로 제공한다거나 숙소 요금을 할인해 주는 등 혜택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나라의 학생들이 이 숙소가 위치한 곳으로 몰려들어 있다. 나도 돌려든 사람들 중에 한 명으로 섞여 그곳에 묶었다. 젊은 또래의 학생들이 많이 있으니 관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었다. 각종 투어 광고에 액티비티 광고까지 넘쳐나는 중앙 홀의 게시판은 피자의 토핑처럼 그득하고 알록달록한 자태를 품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게시판을 초점 없는 눈으로 훑어보다가 포커스가 맞춰지는 백색 종이에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SCUBA DIVE, FREE PICK UP"
난 사실 물 공포가 있다. 특히나 바다 수영에 심한 물 공포가 있다. 그래서 브리즈번에서는 그냥 놀이공원 예약이나 해서 다녀오고 가까운 캐언즈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지리적으로 중간 정도의 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스쿠버 다이빙에 대한 광고가 나의 일정을 송두리 째 바꾸어 버렸다.
숙소에 있는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대신해 달라고 했다. 유창한 영어로 예약을 마친 그 직원은 시간이 적힌 종이를 주며 오늘부터 수업을 시작한다며.
"Enjoy"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하게 된 것인지.
내 방으로 들어와 집을 정리하고 지갑이랑 여권을 챙겨 일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통일성도 하나 없는 먼지가 가득할 것 같은 소파에 앉아서 다른 투어 광고 전단지만 만지작 거렸다. 시간은 금방 지났다. 잠시 후 도착한 늙은 백발의 아저씨는 나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의 차로 나를 안내했다. 거기서 거리는 조금 있었다. 내가 있던 숙소는 시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어디로 가든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내가 수업을 받아야 하는 곳은 바닷가 근처의 다이빙 샵이었다. 노란 나무 벽에 미닫이 유리 문이 달려 있는 1층짜리 작은 건물은 검은색 슈트가 동대문 새벽시장에 있는 매장처럼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그 슈트를 피해 뒷문으로 고무 슈트를 헤치고 지나가면 작은 공간과 사무실이 나타난다.
그 작은 사무실에 앉았다.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흰 칠판에 수업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책상 위에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책이 한 권 놓여 있고, 아무도 없었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공부하는 교실이었다. 내가 들어와 교실을 둘러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곧 들어오셨다. 아까 운전하셨던 나이 있으신 남자분이 아니었다. 조금은 나이가 있으신 모습의 여자 강사분이 아직 물이 떨어지는 슈트를 벗지 않고 그대로 들어오시면서 밝은 미소로 인사해 주셨다. 그렇게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수업은 더 어려웠다. 필기는 한국어 책으로 구해주셔서 공부도 하고 시험도 잘 쳤는데, 수영 실기 시험은 너무 힘들었다. 맨몸으로 200미터 수영, 수영 핀을 신고서 5미터 풀장 아래로 내려가서 수경 벗기, 칠판에 적인 내용 읽어 오기와 같이 스쿠버 자격시험 중에서 수영장에서 해야 하는 남은 시험도 무사히 마쳤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물에 온전히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 일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극적으로 물에 들어갔더니 나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수영장에서 했던 실기는 그나마 물을 먹어도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었지만, 바다 실기에 들어가서는 바닷물을 마시게 되면서 혼돈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나는 물 공포증이 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가 있다. 사람마다 달라 이렇게 해결하면 좋겠다는 위로도 나는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조류 공포증이 있을 수도 있고, 나처럼 물 공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나에겐 없다. 다만 공포증 안에서만 머물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해주고 싶다.
내가 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금까지도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름다운 동해 바닷속, 아프리카 바다, 지중해 바다, 카리브 해변, 이집트 다합의 블루홀, 태평양과 남극해까지 내가 앞으로 다시 가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바닷속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다행이라는 말보다. 행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날에 내가 그 광고지를 보고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하게 되는 순간부터 내 인생의 큰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하마 타면 영원히 볼 수 없을 뻔한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만약 주저하는 마음에서 한 번 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할 까, 말 까 할 때는 해라'라고, 생각이 들면 꼭 하라는 명언처럼 말이다. 두렵고 걱정이 되고 겁이 나는 일은 있겠지만 지나고 보면 큰 행운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다. 나처럼 생각지도 못한 경험으로 차츰 물에 대한 공포가 잦아들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 큰 행운이 된다.
해 보고 싶은 일이라면 꼭 일찍 해야 한다. 두려운 일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칫 무모하게 시작해 버린다면 오히려 극복하긴커녕 더 큰 공포와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공포가 공포로만 남고, 두려움이 두려움으로만 남게 된다면 좋아질 기회를 잃게 된다.
친구 중에는
"지금에서 뭘 새롭게 하나며 그냥 그대로 살련다"
라는 말을 입버릇 처럼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전혀 다름이 없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산다.
행운을 얻고자 해서 얻은 건 아니지만, 내가 무서워 하는 일을 극복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얻었다. 바닷 속을 볼 수 있는 능력이 그렇게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전혀 예상을 못했다.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 각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감정설명서', 'ㅇㅇ극복기', 'ㅇㅇ탈출'처럼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책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책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저 종이에 불과해진다.
만약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더 좋아할 수 있게,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덜 무섭게 만들어 두면 언젠가 찾아오는 행운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번 휴가에 울릉도 바다에서 자유롭게 물속을 누비 던 나 '김물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