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집에 들어오면서 냉동 대패 삼겹살을 500그램 사들고 들어 왔다. 이틀째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청경채와 숙주를 요리해서 먹기 위해 대패 삼겹살을 선택했다. 돼지고기는 배신을 하지 않는 맛이니까 그것보다 더 맛있는 채소를 넣어서 기본 소금간만 해서 요리하면 딱 맛있으니까. 제대로 맥주 안주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호주에서 국제 전화를 걸어 집에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보다 더 많이 통화한 이유는 내가 20년 넘도록 집에서 먹었던 음식의 조리법을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에 도착해서 전화를 드렸을 땐 어머니도 우시고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통화를 길게 하지 못했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니까 떨어져 있는 시간이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헤어진 이별의 슬픔이 조금은 무뎌지고 견딜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여행을 위해 모아 둔 나의 통장은 조금씩 비어졌다. 원래부터 얼마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밖에서 점심을 사 먹는 일을 집에서 도시락 싸는 일로 바꾸었다. 아침에 먹은 음식을 싸서 가거나 저녁에 먹은 음식을 미리 싸두고 아침에 냉장고에서 꺼내 가는 걸로 점심을 대신하게 되었다. 장소마다 전자레인지는 다 있었기 때문에 데워 먹기엔 무리가 없었다. 계절도 가을이라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 했을 때 였다.
아침은 주로 샌드위치를 많이 먹었다. 냉장고에는 샌드위치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있었고, 가끔 사치를 부리고 싶으면 그 속에 계란 프라이 하나를 넣어 먹었다. 아침이나 점심은 간단히 먹는 편이었지만 저녁에는 특별하게 먹는 편이었다. 밖에서 먹으면 아주 특별한 저녁이고, 호주에 먼저 와서 이곳에 정착한 어학원 누나 집에서 모여 먹게 되면 찜닭이나 수육을 먹었다. 나중엔 음식의 종류가 많아져 파티처럼 바뀌어 버리긴 했다. 그렇다고 매일 그렇게는 먹을 수 없었으니 특별한 모임이 없이 집에서 먹으면 마트에서 마감 세일하는 재료들을 구입했다. 과장이 아니라 나의 양 손바닥만 한 크기의 로스팅 닭다리를 하나 사서 오면 두 끼는 해결이 될 정도로 양이 많았다. 얼마나 많았는지 닭다리의 살을 발라내고, 밥을 지어 볶음밥을 해서 저녁으로 먹고 그 남은 걸로 도시락을 싸면 다음 날 점심까지 해결이 될 정도였다. 차이나 타운에 있는 중국마트에서 만두를 사면 전날 닭 조각을 삶아낸 육수로 만둣국을 끓여 먹기도 하며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었다.
여행하는 것과 그곳에서 사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인데, 내가 사는 일상에서는 세끼를 밖에서 사 먹진 않으니까 외국에서의 나의 일상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농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엔 영어 실력도 부족했고, 이곳에 먼저 입국한 한국 친구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모아 온 돈을 조금씩 꺼내 쓰기 바빴다. 그래서 그 지출을 줄려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요리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요리는 밖에서 사 먹는 외식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의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꽤 합리적인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어학원을 다녀와서는 크게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시간을 쓰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집에 전화해서 물어본 레시피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서 먹었던 음식이 '단무지 무침'이었다. 지금이야 뚝딱하고 금방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 때의 나는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만 했었다. 단무지는 차이나타운 마트에서 샀고, 나머지 채소들은 쉽게 구 할 수 있었던 것들로 만들었다. 반달의 단무지를 얇게 썰고, 다시 반으로 잘라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 단무지 특유의 새콤한 물을 뺏다. 그 위에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두르고 조각낸 청경채를 썰어서 같이 무친다. 그게 나의 첫 요리였다.
가끔 그때의 맛이 생각이 난다. 그 후에도 많은 요리를 만들었지만 단무지 무침이 특히나 많이 생각난다. 김치를 먹고 싶은데, 비싸서 쉽게 살 수 없었고 도시락 한편에 넣어야 하는 반찬이 생각나지 않을 때 영웅과 같이 나타난 메뉴였다. 한동안 많이 먹은 질리지 않은 최애 음식이었다. 단무지 한 줄이 그렇게 긴 줄도 모르고 사버리는 바람에 한번 만들면 학원에 온 친구들을 나누어 줘도 남을 만큼이었다. 손이 커서 그렇지 나는 지금도 꼬들 단무지 무침을 보면 먼저 손이 간다.
그 이외에도 많은 음식을 했었다. 인도에서는 콜라 찜닭을 만들어 먹었고, 남미에서는 와인 수육을 만들어서 겉절이와 함께 먹었다. 이집트에서 떡을 직접 만들어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은 일은 지금도 그때 친구들과 했던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그렇게 맛있진 않았던 기억이다.) 음식재료 구하기 어려운 아프리카에서는 짬뽕을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이건 맛있었다)
맛이야 어떻든 만들어 본 음식들은 다른 사람들과 가지는 즐거운 시간에 촉매를 했고, 추억이 되었고, 그날의 기억이 되었다. 칼질의 기술은 점점 늘었고, 간을 보지 않고 만들어도 대충 간은 맞았다. 양조절은 지금도 잘 못하는 편인데 이건 그냥 고칠 수 없는 엄마의 유전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늘 음식을 만들면 양조절에 실패한다. 적당히라고 말하지만 양푼에 한가득 음식을 하는 모습에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여행을 하며 혼자 음식을 해 멱는 시간이 늘면서 요리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 욕심이 조금씩 커지면서 한국에 들어오자 조리사 자격증 수업을 신청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굳이 자격증을 첨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훗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자격증 취득 도전을 했다.
이야길 한 적이 있지만 나는 특별히 무엇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일은 뭐든지 다 잘 하지 못했다. 그런 나라도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있다. 학생 때는 그렇게 싫었던 제2외국어의 일본어를 공부 안했던 시절을 일본에 발을 딛자마자 후회하고, 중국을 여행 할 때는 영어가 안 되는 마을에 들어가면 평소에 생각도 하지 못했던 중국어가 간절해 지면서 외국어가 재미있어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필요성을 못 느끼는 시기에 너무 많은 공부를 해서 공부 자체가 싫어진 것 일지도 모른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 필기시험에는 생물시간에 배웠던 세포와 바이러스에 대한 내용, 기술 가정 시간에 공부했던 위생과 보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식품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필요하다. 이 모든 내용은 과거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이었다. 조금 심화된 내용이 있긴 했지만 한테 그때의 교과서에서 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내가 이 내용을 공부해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기 바빴다면 지금은 그 내용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조리사 가격을 가질 수 있는 기본 이론이 되었다.
누구나 흥미가 생기는 어떤 일에 대해선 조금 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흥미나 작은 관심들이 나의 삶을 조금씩 변화 시키는 것 일지도 모른다. 한 라디오 방송에 천문학을 공부한 유튜버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 한다고 했다.
"과학은 깔깔 대면서 웃을 수 있는 학문은 아니지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보는 시선의 해상도를 높여 줄 수 있다. "
이 말을 들으니 나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있다면 그 일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내가 사는 평범한 일상이 조금은 두근거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리사 자격이 없을 땐 몰랐는데,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면 그 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레시피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아침에 수영을 다니면서 호흡을 참는 연습을 해보면서 프리다이빙 훈련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단순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만 했던 일상이 조금은 풍요로울 수도 있다.
만약 그 일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