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의 연극이 모두 막을 내렸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소리도 처음 시작과 같이 연출이나 스텝이 나와서 "우리 공연 여기까지입니다."라고 하면 비로소 우리의 무대가 막을 내린다. 마지막 무대에 오른 그 순간까지도 믿기지가 않거나 흥분이 된 상태라 주변을 돌아볼 수도 없었고, 심지어 누가 왔다 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결혼한 친구가 이야기를 해줬다. 결혼식 당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했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 가서 누워 있으면 누가 왔다 갔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무대 합을 맞추어야 하는 나의 상대배우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내가 나오기 전에 나왔던 사람과 내가 나오고 난 뒤에 나오는 사람에게만 눈길을 주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모두 끝이나 있었다. 공연을 끝내고 나서는 홀가분한 마음과 동시에 우리 공연에 완성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는 프로가 아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은 실수도 있었고 공연 중간에 무대 뒤에서 소란스러운 일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해프닝으로 넘길 이야기들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긴장했고 손발이 떨려 일을 수습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조금 아쉽기도 했다. 무대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배우였음을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얼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긴장이 풀렸지만 그전 공연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어쨌든,
공연이 모두 끝났다.
객석이 텅 비었고 우린 무대에서 내려왔다.
매 회마다 수많은 박수가 있었다.
관객들이 선물로 준비한 간식과 꽃다발들도 한 가득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서둘러 소품을 정리했다. 의상들도 빠르게 정리를 마쳤다. 우리가 타고 온 차에 무대 있었던 소품들과 입었던 의상들을 욱여넣었다. 여행가방처럼 쌀 때는 잘 들어가던 것들이 그새 부피가 커졌는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를 쓰며 차 문을 닫고 나니 드디어 '후' 하고 묵은 공기가 나온다.
짐을 넣어두고 가벼워진 손으로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공식적인 뒤풀이를 시작한다.
모두 자리에 앉아 약간은 소란하기도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테이블 가운데에서 연출이 잔을 들고 일어선다.
"자 여러분 모두들 수고 많이 했습니다. 앞에 잔들 채우시고 다 같이 작품 이름 외치며 건배하도록 하겠습니다."
식당에 우리 밖에 없었다. 우리가 통으로 빌리진 않았지만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족발집이었기 때문에 내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첫 건배를 할 수 있었다. 맑은 액체가 담긴 작은 잔들이 서로 부딪친다.
"짤랑"
마치 수업 마침 종소리 같아서 왠지 울림이 후련하다.
음식을 앞에 두고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공연 이야기였다.
"그때 네가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먼저 나가는 바람에 대사를 억지로 만들어 할 수밖에 없었어"
"나도 나갈 차례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준비 됐다며 나가라고 해서 나왔더니 그렇게 된 거야"
"나 대사 앞부분 하고 뒷부분 바꿔서 했는데 아무도 몰랐지?"
"아니, 다 알겠던데? 객석에서는 몰랐겠지만 우린 다 알고 뒤에서 웃었는데?"
"나! 나! 나! 마지막에 나 나갈 때 맨발로 나간 거 봤어? 다들 신발 신고 있는데 나 혼자 맨발로 나갔더라 왜 아무도 나한테 신발 신으라고 하지 않았지?"
"네가 3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니까 신발은 당연히 신고 나올 줄 알았겠지"
"하하하하하"
공연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전혀 웃을 일이 아닌 이야기들이 누군가는 숨넘어가게 하는 웃음의 장치였고, 누군가에겐 부끄러움에 소재였다. 신발 신지 않은 나 역시도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까만색 양말이라 객석에서 티가 많이 나지 않았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해 주었다.
내일도 공연이 있을 것 같지만 '공연이 끝이 났다는 것'은 뒤풀이를 하고 있을 때 비로소 정의되는 것 같다. 우리가 연습 중에 회식을 하거나 모여서 밥을 먹고 술을 한잔 마시더라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이렇게 뒤풀이를 하기 위해서 모여 있으니, 다른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 자리를 나가면 더 이상 연습이 없다는 생각에 후련함 반, 아쉬움 반에 감정이 뒤 섞이는 것 같다.
다음 주 연습이 없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다음 주 연습이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한 자리에서 함께 볼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주말과 평일의 저녁 시간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게 좋은 일이지만 오랫동안 서로 합을 맞춰 온 사이인데 이렇게 무 자르듯 한 번에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뒤풀이에서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다음 공연도 혹은 또 다른 수업에서도 아니면 직접 연락해서 만나는 방법도 있으니 딱히 헤어짐에 슬픔 그런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주에 수업이 없고 한자리에 모여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행복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마지막 잔을 들고 연출이 외쳤다.
"우리 모두
어디서나, 매일매일, 행복합시다"
'그럼요 다들 행복합시다.'
속으로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