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득만 보겠어. 잃어야 얻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

by SseuN 쓴

여행을 하다 보면 손해와 손실이 생긴다. 멍청 비용이라고 하는 몰라서 쓰게 되는 비용, 숙소에 두고 나와서 잃어버리게 되는 비용, 강도나 도둑을 맞아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심지어 같은 곳을 두 번이나 가게 되면서 생기는 비용도 이득으로 볼 수는 없다. 온전히 이득이 되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손해가 조금은 보상되길 바랄 뿐이고, 큰 손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게 꼭 여행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지금 순간에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약속시간을 착각해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택시 타야만 하는 경우, 새해 다짐으로 운동을 등록해 두고 첫 주에만 가서 운동하고 사물함 뺄 때만 가게 되는 경우가 바로 손해이다. 사실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적당한 손해와 이득으로 우리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여행이나 인생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나는 여행을 하는 중에 강도를 만나 내가 가진 물건을 빼앗긴 경우가 두 번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미수에 그치는 일도 있었다. 남미를 여행을 하는 동안 위엄하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곳이 몇 곳 있었는데. 그곳들 중에서 남미 에콰도를 여행할 때 이야기이다. 에콰도르에서 바뇨스라고 하는 도시로 이동을 하는 버스 안에서 강도를 만났다. 저녁에 버스를 타고, 밤을 버스에서 보낸 뒤 바뇨스에 새벽에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옆에 타고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조용히 잠을 청했고, 나도 그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잠을 잤다.


잠깐 잠에서 깨어 보니 내 옆에는 사람이 바뀌어 있었고, 버스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빠져 있었다. 핸드폰으로 확인한 위치는 아직 조금 더 남았으니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다 잠시 후 뒤쪽에서 소란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내 발아래에 두고 있던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가방이 분명 발아래에 두고 잤는데, 깨어나 보니 가방은 내 머리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때는 무섭고 경황이 없어서 가방을 들고 내렸지만 가방에는 노트북과 돈이든 지갑이 없었고, 카메라도 없었다.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내가 자는 동안 가방을 빼냈고,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가방에든 물건을 훔친 것이었다. 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버스에 올랐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고, 내 물건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허무했다. 지키고자 했던 물건들이었다. 카메라 없이 여행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노트북 없이는 블로그를 쓸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답답한 일이었다. 개인정보 가득한 노트북을 잃어버렸다. 싹 밀어버리고 중고시장에 물건이 넘어가겠지만 불안하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 일이 여행의 권태감을 몰려오게 만들었다. 권태감이 쉽게 가실 것 같지 않았고, 생 돈을 날렸다는 좌절감과 자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지 못했던 자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나를 지키고 좌절함을 위로해야 할 당사자가 오히려 더 심하게 채찍질하는 바람에 몸살까지 겪었다. 여행을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되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아오는 도시였기 때문에 숙소에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묵고 있었다. 아침에 낙심한 표정으로 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준 부부와 내가 몸살 걸렸을 때 맛있는 거 사다준 커플, 그리고 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던 인스타 친구까지 바뇨스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겐 보석과 같은 존재로 남았다. 심지어 인도에서 만났던 부부도 그곳에서 다시 만난 만큼 에콰도르의 바뇨스가 나쁜 도시로만 기억되진 않았다.


상실감에 빠진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준, 그날의 모슨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자신들의 여행도 있을 텐데, 나를 걱정해 주며 자신들의 일정을 나에게 추천해 주면서 하루를 같이 보내주었다. 몸살을 털고 일어나 내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었다. 슈퍼와 시장을 다니며 간단한 식재료를 준비했고, 저녁엔 숙소에서 시간을 맞춰 내가 만든 한식을 나누어 먹었다. 맥주도 곁들이면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바뇨스에서 보낸 지 며칠이 지났다. 우리나라의 설날을 그곳에서 맞이했다. 숙소에 지내는 한국 사람들은 외 국이었지만 설날이라는 명절에 신이 나있었다. 나도 인도에서 만났던 부부가 바뇨스로 온다길래 한국 슈퍼에서 식재료를 부탁했고, 내가 가진 조미료를 꺼내와 주방에서 설날에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떡국과 감자전으로 설날 분위기를 낸 우리들은 다시 각자의 여행으로 옮겼지만 그때 보낸 시간들과 추억들은 가득 남았다.


이렇듯, 유형이든 무형이든 우리가 잃는 것이 있다면, 순리대로 그것이 채워진다. 가득하다면 그것을 쓸 일이 반듯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잃은 것을 쫓아 현재를 망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잃은 것에 정신이 팔려 찾을 수 없는 범인을 쫓아 시간을 낭비하고 쏟아 내었다면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냥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채워질 것에서 대하여 기대하며 소망하는 것이야 말로 더 잃어버리는 않는 것이다.


다시 살 수 있는 물건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사람들을 만났고,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잃은 것과 손해 본 것을 다시금 채워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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